안향련은 1944년 전남 광산군(光山郡) 송정리(松汀里)에서 태어났다. 일부 기록에는 1945년생으로 나타난다. 부친은 판소리 명창 안기선(安基先), 백부는 가야금 명인 안기옥(安基玉)이다.
6세에 목포로 이주하여 전남 일대에서 소리선생으로 유명했던 부친에게 소리를 배웠으며, 13세에는 전국어린이 명창대회에서 장원을 하였다. 1959년 부친이 작고한 이후부터 3년간 보성의 정응민에게 심청가를 배웠으며, 정응민이 작고한 뒤에는 장영찬에게 소리를 배웠다. 19세에는 박봉술에게 적벽가를 배웠다. 1965년에 부산으로 이주하여 부산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였다.
1968년 서울에서 개최된 판소리 경연대회를 계기로 1970년 상경하여 김소희 문하에 입문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1976년 남원춘향제 제3회 전국판소리명창대회에서 장원을 하였고, 1978년에는 뿌리깊은나무 판소리감상회에서 「심청가」를 완창하였다.
안향련은 1970년대 TBC, MBC, KBS에서 다양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큰 인기를 끌었으며, 특히 조상현과 함께 창극 「춘향전」(KBS), 「심청전」(MBC), 「황진이」(KBS)의 주연으로 활약하였다.
안향련은 천부적인 성음과 재능을 타고난 것으로 전하며, 어려서부터 훌륭한 스승에게 학습하였다. 그는 호소력 있는 청구성을 지녔으며, 서슬 있는 성음으로 상하청을 자유롭게 구사하였다. 판소리는 물론 각종 창극 무대에서 빼어난 연기력을 발휘하였고, 특히 민요와 신민요는 대중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
안향련은 판소리 5바탕을 두루 배운 것으로 전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그의 판소리를 보면 보성소리 「심청가」와 「춘향가」가 근간을 이룬다. 「흥보가」는 학습과정을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박녹주 바디와 같으므로 박녹주-김소희를 통해서 전승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남긴 음반은 「안향련 민요걸작집」(1975), 「심청가」(1980) 등이 있고, KBS에서 「흥보가」(1980. 7)와 「심청가」(1981. 3. 28, 4.2, 4.4.) 완창 녹음을 남겼다. 조상현과 함께 「열사가」(1979) 중 임진왜란 편을 녹음하기도 했다. 신민요로는 「야월삼경」, 「울지 마라 가야금」, 「들국화」 등이 있다.
안향련은 광복 후에 판소리를 전승한 세대로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1981년 12월 20일 서울에서 37세를 일기로 작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