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대승 경전의 하나인 실차난타(實叉難陀) 번역의 80권 『화엄경』주본(周本)을 저본으로 하여, 당나라 징관(澄觀, 738∼839)이 뜻을 알기 쉽게 풀이하고 송나라 정원(淨源, 1011∼1088)이 해석을 덧붙인 교장(敎藏)의 하나이다.
의천(義天, 1055∼1101)은 송나라에 건너가 혜인원(慧因院)에서 정원에게 화엄대의를 들었는데, 이 때 이용한 정원의 주소본(註疏本)『대방광불화엄경소』120권을 당시 일류 각수(刻手)에게 3천냥을 주고 판각한 뒤 가지고 귀국하였다. 이 책은 전 120권 가운데 41권의 분량이다.
목판본, 41권 41첩. 책의 크기는 병풍처럼 일정한 크기로 접은 절첩(折帖) 상태인데, 세로는 32.5㎝, 가로는 10.8㎝ 크기이고, 광고(匡高)는 23.5㎝이다. 판식(版式)은 테두리마다 하나의 검은 선을 돌린 사주단변(四周單邊)이고 본문에는 계선(界線)을 두어 20행 15자이며, 잔글씨인 소자(小字)는 40행 20자로 되어 있다. 하지만 1장(張)이 4행씩 5면으로 접혀져 있어서 다른 목록에서는 4행 15자로 표기되어 있다.
표지는 상즙(橡汁)으로 염색한 종이를 사용하였는데,앞뒤가 온전한 것과 함께 일부가 낙장(落張)이 된 것도 있다. 표지 가운데에 금니(金泥)로 그은 테두리 안에는경의 이름과 함께 권차(卷次)를 금니로 썼고, 그 위에 개법장진언(開法藏眞言)의 부호를 표시하였다. 판심제(版心題)는 ‘주화엄경장차’라고 되어 있다. 각 권의 끝부분에는 정사년(丁巳年)에 창원 백월산(白月山) 남백사(南白寺)의 주지가 썼다는 기록과 수결(手決)이 묵서(墨書)되어 있다. 보존 상태와 권의 끝부분에 묵서로 기록된 내용에 의하여 불복장(佛腹藏)되었던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글자 서체는 송판(宋板)에서 유행한 전형적인 구양순체이며, 필획이 살아 있는 것으로 보아 비교적 초기에 인출된 것으로 판단된다. 종이 재질은 다듬질이 잘된 저지(楮紙)인데, 세로 발끈이 보이지 않는 고려 중기의 양상에 먹의 색 역시 선명하여 높은 수준의 목판 인쇄술을 보여주고 있다.
『대방광불화엄경』은 ‘화엄경(華嚴經)’이라 줄여 부른다.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이 중심 사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화엄종의 근본 경전으로 여겨져,『법화경(法華經)』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경전으로 이해되고 있다.
『대방광불화엄경소』는 고려의 요청에 따라 송나라에서 경판을 완성한 뒤 고려에 보내온 역사적 기록을 증명해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아울러 일본으로 다시 사급(賜給)되어, 중국과 한국, 일본의 불교문화 교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또한 의천이 완성하려던 제종교장(諸宗敎藏)의 완성 과정과 경판의 후대 전래 사실 및 실물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