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수는 해방 이후 「선소운」·「월향」 등을 그린 화가이다. 청전 이상범을 사사하고 1952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한국화 전공)를 졸업했다. 1949년 해방 후 처음 열린 국전에 「청추」를 출품하여 입선했다. 이후 제30회(1981) 마지막 국전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초기의 대표작 「선소운」(1955)과 「월향」(1956)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여 간결하고 선적인 분위기의 화풍을 보여주었다. 1957년 즈음부터 대담한 구도와 독특한 준법의 추상적 회화를 시도하여 실험적이고 독자적인 화격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호는 남정(藍丁), 당호(堂號)는 심영실(心影室), 월아장(粤雅莊), 현동화루(玄同畵樓), 간원(艮園)이다. 1927년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금사리에서 부친 박상래(朴祥來)와 모친 김봉금(金鳳今)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청전 이상범(李象範)을 사사하고 1952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한국화 전공)를 졸업했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으로 약칭)에서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청아하고 선적(禪的)인 경지를 보여주는 독특한 화경을 개척했다.
조모와 부친으로부터 천자문과 서예를 배웠고, 충청남도 공주군 정안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945년에 충청북도 청주상업학교를 졸업했다. 이즈음부터 그림에 뜻을 두기 시작하였고 상경하여 청전 이상범을 사사했다. 이듬해인 1946년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제1회화과의 첫 입학생이 되었고 재학 중에 김용준(金瑢俊), 이상범, 노수현(盧壽鉉), 장우성(張遇聖)에게 배웠다. 1952년에 부산 피난지에서 졸업했으며 졸업 작품으로 출품했던 작품 「실내」는 최고상인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했다.
박노수는 1949년에 해방 후 처음 열린 국전(國展)에 「청추(晴秋)」를 출품하여 입선한 이후 제30회(1981) 마지막 국전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제2회 국전(1953)에 「청상부(淸想賦)」로 특선 국무총리상을 받았고, 제3회(1954)~5회(1956)까지 「아(雅)」, 「선소운(仙簫韻)」, 「월향(月響)」으로 연이어 특선을 받았다. 특히 제4회 국전에서 「선소운」으로 동양화부 최초로 대통령상을 받으며 화단의 주목받는 신예작가로 부상했다.
1957년 제6회 국전 때에는 30세의 나이로 추천작가가 되었다. 1961년에는 국전의 초대작가가 되었고 이후에는 심사위원, 동양화 분과 심사위원장, 운영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이밖에도 대한미협전, 중앙미술대전, 동아미술제, 서울시 미술대전 등에서 심사위원 또는 운영위원을 역임했다. 1960년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문들이 중심이 되어 창립한 묵림회(墨林會)에 참여했으나 곧 탈퇴한 후, 1963년에 김옥진, 김용원, 박세원, 이건걸, 이열모, 이영찬, 전영화, 조복순 등과 청토회(靑土會)를 창립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58년에 첫 개인전을 연 후 꾸준히 ‘박노수 미술전’을 열어왔다. 젊은 시절에 춘곡 고희동(高羲東)에게서 들었던 ‘고예독왕(孤詣獨往)’이라는 글귀는 평생의 지침이 되었고, 외롭고 고독한 예술가로서의 그의 끝없는 도전과 탈속한 그의 작품세계를 대변해주는 말이 되었다.
그는 29세 때인 1956년에 이화여자대학교 교수가 되어 후진을 양성하기 시작했고 1962년에는 모교인 서울대학교의 교수가 되어 20년간 근무하다가 1982년에 정년보다 10년 일찍 퇴직한 후 전업 작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초기의 대표작인 「선소운」(1955)과 「월향」(1956)에서 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여 간결하고 선적(禪的)인 분위기의 화풍을 보여주었지만 1957년 즈음부터 대담한 구도와 독특한 준법의 추상적 회화를 시도하여 실험적이고 독자적인 화격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특히 소년, 말, 사슴, 그리고 강, 수목 등을 모티브로 한 ‘남정화(藍丁畵)’는 1960년대부터 70년대 초까지 다양한 실험을 통해 모색되었으며 동양적인 선묘(線描)를 잃지 않으면서도 신선한 색채감각과 격조 높은 정신세계를 구축하였다. 그의 작품론을 가장 많이 썼던 미술평론가 이경성은 ‘구성력’, ‘색채감’, ‘정신내용’이라는 세 가지 단어로 작품세계를 설명했다.
2003년에 뇌수종으로 쓰러져 병석에 눕게 되었지만 2004년 그의 첫 화집이 출간되었고 2010년에 덕수궁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렸다. 이 회고전을 계기로 1955년부터 박노수가 신문, 잡지 등에 썼던 200여 편의 글 중에서 발췌하여 『화필인생』이 출간되었다.
1987년에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1994년 5·16민족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1995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하였고 2000년에는 3·1문화상을 수상하였다. 2013년 박노수 사후에 그의 자택은 현재 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으로 개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