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성 ()

이경성
이경성
회화
인물
인천시립박물관장, 국립현대미술관장, 워커힐미술관장 등을 역임한 미술인 · 교육자.
이칭
이칭
석남(石南)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9년 2월 17일
사망 연도
2009년 11월 26일
출생지
인천
내용 요약

이경성은 해방 이후 인천시립박물관장, 국립현대미술관장, 워커힐미술관장 등을 역임한 미술인으로 미술이론가이자 미술행정가이다. 호는 석남이다. 1946년 인천시립박물관을 개관했고, 1947년 인천시립예술관을 창설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박물관의 작품을 분산시켜 보존했고,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대여한 유물들은 부산으로 반환하였다. 1951년 《민주신보》에 「우울한 오후의 생리-전시미술전을 보고」라는 글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미술평론을 시작하였다. 이경성은 전시 기획자, 미술관장, 미술평론가로서 한국현대미술의 중심에서 활동하였다.

정의
인천시립박물관장, 국립현대미술관장, 워커힐미술관장 등을 역임한 미술인 · 교육자.
개설

인천 출신. 호는 석남(石南). 이학순과 진보배의 장남으로 태어나 인천 창영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 경성상업실천학교를 수료하였다. 1937년 일본 동경추계상업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전문부 법률과에 입학하여 1941년 졸업하였다. 그러나 일본 유학 기간 동안 법률공부는 포기하고, 도쿄(東京)에서 미술전시회 등을 다니며 미술사와 미술이론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결정했다. 와세다대학 법률과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재판소 서기로 일하다가 1942년 12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이듬해 와세다대학 문학부에서 미술사를 전공하였다.

생애및 활동사항

1940년대 우현 고유섭과 서신으로 지도를 받았으며, 1945년 10월 31일 인천시립박물관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1946년 4월 1일 인천시립박물관을 개관하였고, 1947년 4월 1일에는 인천시립예술관을 창설하였다. 1946년 『대중일보』에 「예술관 개관을 앞두고」와 「조선미학에 대하여」를 기고하며 이론가로서 행보를 시작했다.1950년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박물관의 작품들을 분산시켜 보존했고,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대여한 유물들은 부산으로 반환하였다.

1951년 임시수도 부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최순우와 함께 ‘한국현대미술전’을 기획하였고, 1951년 9월 26일 『민주신보』에 「우울한 오후의 생리-전시미술전을 보고」라는 비평문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미술평론을 시작하였다.

1953년 인천시립도서관 일을 하면서 인천시립박물관을 재개관하여 박물관장직을 수행하였다. 이때 인천의 고적을 답사ㆍ연구하였고, 한미문화관의 기틀을 잡았다. 1954년 오로지 미술평론가 업무에만 집중하기 위해 인천시립박물관장직을 사임하고, 서울로 올라와 홍익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 강의를 맡았다. 1956년부터 1961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 조교수 겸 박물관 참사로 근무를 하였고, 1961년 홍익대 미술대학 부교수로 부임하여 1981년까지 근무하였다.

1959년 「한국 회화의 근대적 과정」을 발표하였고, 1962년 근대미술을 정리하는 한국일보사 주최 ‘한국현대미술가유작전’을 최순우와 함께 기획하는 등 한국근대미술 연구의 초석을 놓았다. 1965년 한국미술평론가협회를 창립, 1967년에는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과 홍익대 현대미술관장직을 맡았다. 1973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초대과장을 맡았으며, 1978년 중화민국 학술원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1년 8월 18일 제9대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취임하였으나, 미술계의 ‘일제 식민지 잔재의 문제’에 대한 학자적 소신을 피력하다가 당시 문화공보부 장관 이진의와의 대립으로 1983년 10월 7일에 국립현대미술관장직을 사임하였다. 다시 1986년 7월 29일 국립현대미술관 11대 관장으로 취임하여 1992년 5월 27일 사임하기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의 운영과 교육, 연구의 기틀을 세웠다.

1983년 워커힐미술관장직을 맡아 개관하였으며, 호암미술관[^1] 자문위원, 일본 소게츠미술관(草月美術館) 명예관장, 모란미술관 자문위원을 지내며 틈틈이 그린 그림으로 여러 차례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저서를 발간하였다. 2009년 11월 26일 미국에서 영면하였다.

미술이론가로서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초석을 세웠으며, 다수의 저서를 발간하여 이론적 체계를 세웠고, 미술비평가로서 김환기, 이중섭, 박수근 등 동시대 미술인들의 작품을 자리매김시켰다. 전시 기획자로서, 미술관장으로서, 그리고 미술행정가로서 한국현대미술의 중심에서 활동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2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목련장 수상

1981년 예술평론상(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수상

1984년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 수상

1988년 일본정부 훈3등 욱일중추장

1992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기사장 수상

1994년 대한민국 세종문화상 수상

1995년 일신문화상 수상

1999년 자랑스러운 박물관인상 수상

2000년 예술문화상 대상(예총) 수상

2001년 자랑스런 미술인상(미술세계) 수상

2003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문화관광부) 수상

참고문헌

『한국근대미술비평사』(최열, 열화당, 2001)
「석남 이경성의 미술비평에 대한 연구」(조은정, 『미술평단』104, 한국미술평론가협회, 2012)
「1950년대 이경성의 미술비평관」(최태만, 『한국근현대미술사학』22,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11)
「석남 이경성의 뮤지엄 인식과 실천」(이인범, 『한국근현대미술사학』22,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11)
「전통과 현대의 다리를 놓다 : 석남 이경성의 미술사 인식」(목수현, 『한국근현대미술사학』22,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11)
「근대미술사 서술의 관점과 그 기원 : 1950-60년대 이경성의 미술사학 연구」(최열, 『한국근현대미술사학』17,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06)
「미술사학자-큐레이터로서의 대학박물관장직」(김영나,『한국현대미술의 단층-석남 이경성 미수 기념논총』, 삶과 꿈, 2006)
「한국전쟁기 이경성의 평문에 나타난 전통과 현대에 대한 연구」(조은정, 『한국현대미술의 단층-석남 이경성 미수 기념논총』, 삶과 꿈, 2006)
주석
주1

현 삼성미술관 리움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조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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