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은 해방 이후 「환경 속의 인간들」·「비상」 등의 작품을 낸 조각가이다. 근대 조각 정착기에 미국 유학에서 경험한 서구 모더니즘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했다. 1957년부터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철조에서 용접 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대표작인 「환경 속의 인간들」(1971)은 청동의 구조체를 대지예술에 접목시켜 인간과 환경의 조응 관계를 설치적 개념으로 풀어낸 서사 작품이다. 「비상」(1980)은 날개를 주제로 서사적이며 감성적인 경향을 보이는 작품이다. 김정숙은 한국 서정 조각 분야에서 조형주의적인 경향을 인도한 선구적 존재로 평가된다.
김정숙은 근대조각 정착기에 당시로서는 드물게 미국 유학을 통해 직접 경험한 서구 모더니즘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였으며 현대적 감각과 어법을 동화시킨 진취적인 작가이다. 1950년대에는 여러 차례 유학과 실험적인 작품 섭렵을 통해 자신의 시각을 확립해 갔다.
김정숙의 작품 경향은 개인전을 가진 1960년대부터 3기로 구분할 수 있다. 초기에는 키스 연작을 연상시키는, 브랑쿠지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을 선보였으나 1962년 개인전에서 사랑과 조화를 주제로 한 인체작품을 통해 우아하고 부드러운 유기성을 드러내었다. 볼륨과 공간의 문제에 천착하여 제작된 토르소는 유기적인 존재로서 원형성의 추구를 볼 수 있는데, 「비정(飛情)」(1967)에서와 같이 추상적 형태에 공간과 원형질에 대한 탐구를 보이는 작품이 주를 이루었다. 2기인 1970년대에 들어서는 자연환경과 인간이란 측면으로 주제가 확대되고 생명적 율동을 강조하였다. 「환경 속의 인간들」(1971)은 청동의 구조체를 대지예술에 접목시켜 인간과 환경의 조응관계를 설치적 개념으로 풀어낸 서사작품이다. 3기인 1980년대는 조각의 근원적 미에 대한 탐구에서 벗어나 날개를 주제로 서사적이며 감성적인 경향으로 발전시키는데 이 시기는 「비상」으로 대표된다.
김정숙은 사랑, 자애와 같이 기독교정신과 여성적인 감성이 강조된 작품세계를 보여 주었고, 다양한 기법의 시도와 재료 도입을 통해 근대조각사를 풍부하게 하였다. 한국 서정조각 분야에서 조형주의적인 경향을 인도한 선구적 존재로 평가된다.
1949년 홍익대학교 미술학부에 입학하여 윤효중과 유진명에게 배우고 1953년에 졸업하였다. 1935년에 이화여자전문학교 가사과를 중퇴하고 결혼한 뒤, 만학으로서 다시 대학에 입학한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1955년까지 미시시피 주립대학 대학원에서 레오 스팟 교수에게 사사하고, 1956년 미시건주 블룸필 힐즈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 대학원에서 수학하고 돌아와 1957년부터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재직 시 당시로서는 국내에서 생소하던 용접조각을 시도하며 학생들에게도 강의하여 한국 철조에서 용접 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듬해 다시 도미하여 1959년까지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에서 산업디자인 및 금속공예 연구 과정에서 수학하고 돌아와 1983년까지 홍익대학교 조각과장, 미술학부장을 거쳐 조형미술연구원장을 역임하였다.
1957년부터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초대작가, 심사위원, 조각분과 심사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0년에는 제3차 국제미술협회 총회 한국대표로 참가하였고 1967년 제9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전권대표로 활동하였는데 이때 출품한 「비정A」를 주최측에서 구입하여 화제를 낳았다. 1975년 한국미술협회 부회장, 1979년부터 한국미술협회 고문을 맡았으며 동료 여성 조각가들과 함께 한국여류조각가회를 만들어 1974년부터 1982년까지 회장을 역임하였고 이후 1991년까지 고문직을 수행하며 여성 조각가의 사회적 활동에 관심을 갖고 이들을 후원하였다. 한편 1983년부터 1987년까지는 한국칠보작가협회 회장을 하며 국내에 칠보기술의 보급과 예술화에 힘썼다.
서구 조각과 이론 소개에도 관심이 있어 「조각과 나」( 『평화신문』 1955. 7. 10), 「미국의 현대조각─작가와 그들의 작품세계」( 『경향신문』 1956. 1. 9∼15), 「현대조각의 발전」( 『서울신문』 1960. 2. 19) 등의 글을 발표하였다. 퇴임 후에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로 후진을 양성하다가 1991년 타계하였다.
1962년 신문회관에서 1회 개인전을 가질 때는 같은 학교에 근무하던 김환기가 간단한 평문을 썼으며 1971년 신문회관에서 가진 2회 개인전에서는 스스로 「김정숙의 예술세계」라는 글을 통해 자신의 작품 경향을 밝혔다.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헤리티지 화랑(1975), 한국일보사 로스엔젤레스 지사(1977)에서도 개인전을 가졌다. 1978년 현대화랑에서의 개인전은 평론가 이일이 ‘원형태 속의 생명의 율동’이란 측면에서 평하였으며 1982년 미국의 아시아 모던 아트 갤러리에서의 개인전 이후 1983년에 현대화랑, 1985년에 미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1989년 현대화랑에서 생전 마지막 개인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