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술이 미술에 도입된 것으로 20세기에 서양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여 동아시아로 확산되었고 한국에는 1950년대 후반에 유입되었다. 용접은 철, 동, 스테인리스스틸과 같은 금속을 모재(母材)로 해서 불대(torch)로 용접봉을 녹여서 연결하거나 모재 자체를 직접 녹여 붙여서 형상을 만드는 방법이다. 용접의 재료가 철일 경우에는 “철조”라고 부를 수 있다.
불대로 금속을 자유롭게 붙였다 떼었다 하면서 자유롭게 형상을 만들고 수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조각가들의 표현 가능성이 크게 확장되었다. 또한 용접기법으로 형상을 자유롭게 만들게 되면서 조각은 단단한 덩어리로 되었다는 전통적 개념이 해체되었고 또한 기성의 오브제를 자유롭게 도입할 수 있게 되었다.
용접조각은 1928년경에 피카소(Pablo Picasso)가 곤잘레스(Julio Gonzalez)의 도움을 받아 철사를 용접해서 입체구조물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점차 기성의 오브제를 용접하여 이어 붙여 형상을 만들게 되면서 금속조각의 표현이 손쉬워졌고 청동조각과 같은 전통적인 금속조각의 방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용접조각이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유럽은 물론 미국과 동아시아로 크게 확산되었는데, 특히 물자가 부족하던 시기에 고철을 활용할 수 있었고 또한 용접으로 형상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전쟁의 참상과 심리적인 고통을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적극적으로 용접기법을 조각에 활용한 조각가로는 세자르(Cesar Baldacchini)를 들 수 있다. 세자르는 1947년에 처음 고철을 가지고 인물, 동물, 거대한 물고기를 앙상하게 표현했는데, 그가 고철을 이용한 철 용접조각을 제작하게 된 동기는 경제적인 이유와 함께 거칠게 고철을 용접하여 전쟁의 희생물을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전쟁의 잔혹은 미국의 데이비드 스미스(David Smith)의 1940년대 용접조각에서도 표현되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에서 새롭게 등장한 공중전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했던 데이비드 스미스는 무기를 상징하는 강철을 용접하여 강철의 날카롭고 예리함을 살려 작품을 제작하였다.
용접조각은 제2차 대전 이후에 동아시아 국가로 퍼져 나갔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한국전쟁 이후 고철을 이용한 용접조각이 크게 유행하였는데, 대부분의 조각가들이 고철을 가지고 용접조각을 제작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철조’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1950∼60년대에 젊은 조각가들은 용접조각을 시도하지 않은 작가가 거의 없었고 송영수(宋榮洙), 오종욱(吳宗旭), 박종배(朴鐘培), 박석원(朴石元)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금속으로 조각 작품을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는 녹여서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주조, 두드리고 늘여서 변형 시키는 단조, 볼트나 리벳으로 금속을 서로 이어 붙이는 결합, 불로 녹여서 접합하는 용접 등이 있다.
용접조각은 철, 동, 스테인리스스틸 같은 금속을 불꽃(torch)으로 직접 연결하여 형상을 만드는 조각방식인데, 전통적인 조각의 방식인 깎아내기나 살붙임의 영역을 넘어선 완전히 새로운 조각방식으로, 금속을 현대적인 절단기로 자르고 녹이며 자유롭데 떼었다 붙였다 하면서 감정을 즉흥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현대조각의 미학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조각가들에게 전쟁으로 인한 파괴, 고통, 죽음을 시각화하기에 적절한 언어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한국전쟁을 체험한 조각가들에게 전쟁의 참상을 표현하는 적절한 기법이었는데, 무엇보다도 전쟁으로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에 고철을 모아 시대의 고통과 분노를 발산하는 효과적인 조각 기법으로 1950-60년대에 크게 유행했다.
한국의 용접조각가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조각가인 송영수는 1957년에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효(曉)」, 「부재의 나무」를 출품하여 용접조각으로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는 처음에는 주로 드럼통을 해체해서 용접의 재료로 사용하였고 차츰 동판을 이용하여 「대립」(1967), 「순교자」(1967), 「새」(1969) 등 보다 거칠고 표현적인 작품을 제작하였다. 박종배는 1965년에 「역사의 원」이라는 철 용접조각으로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고철을 거칠게 용접하여 전쟁의 고통을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였으며 박석원 역시 1968년에 「초토」라는 철 용접조각으로 국회의장상을 받았다.
고철을 이용한 용접조각은 전쟁의 참상을 표현하고 심리적인 불안을 표현할 수 있었다. 동시에 녹슬고 거친 고철을 불꽃으로 녹이면서 작품을 제작하는 방법 자체가 작가로서의 실존을 확인하는 방법이기도 했으며 내적인 울분을 해소하기도 했다. 또한 고철을 이용한 용접조각은 돌이나 나무, 청동 같은 전통적인 재료와 기법보다 손쉽게 추상조각을 제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젊은 작가들이 현대적인 조각가로 발돋움하기 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용접조각을 구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