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에 결성되었으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졸업생 6명(김봉태, 김종학, 손찬성, 박재곤, 윤명로, 최관도)과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생 6명(김기동, 김대우, 김응찬, 송대현, 이주영, 유영렬)으로 이루어진 미술단체로, 국전의 제도와 기성화단에 대한 거부의식에서 전위적인 미술을 구현하였다. 2차례 전시회를 열었는데, 제1회는 1960년에 주로 앵포르멜적인 화풍의 작품으로 덕수궁 담벽에 가두전 형식으로 전시하였고 제2회 전시는 현대미술가협회와 연합하여 경복궁미술관에서 1961년 10월 1일부터 7일까지 연립전으로 열렸다. 연립전은 현대미술가협회의 이양로 외 8인과 60년미술가협회의 김봉태 외 8명의 수십점의 출품작으로 열렸다.
1960년대는 4·19혁명과 같은 역사적 사건에서 드러나듯, 젊은이들이 기존가치와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과 거부감을 갖고 있었던 시기다. 이러한 “기성세대를 불신”하던 시대적 상황은 미술계에서도 나타났는데, 젊은 미술가들은 국전의 기성화가들이 시대적으로 둔감할뿐 아니라 파벌적이고 편파적이라고 비판하였다. 새로운 세대는 예술인으로서의 순수성을 무기로 한국화단을 바르게 이끌어보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제1회전은 가두전 형식으로 국전이 열리던 덕수궁의 담벽에 열렸고 제2회 전시는 1961년 10월1일에서 7일까지 경복궁미술관에서 현대미술가협회와 연립전으로 열렸다. 제2회 참여작가는 제1회 전시회 동인 중에서 송대현, 이주영, 김응찬이 불참하고 권영숙, 김대우, 김봉태, 김종학, 박재곤, 손찬성, 유영렬, 윤명로, 최관호 등 9인 참여했다. 60년미술협회는 제2회전을 열고 막을 내리고 대신 현대미술가협회와 연합하여 악뛰엘(Actuel, 1962∼1964)을 창립하였고 1962년 악뛰엘 창립전에는 김대우, 김봉태, 김종학, 김창렬, 박서보, 손찬성, 윤명로, 이양노, 장성순, 전상수, 정상화, 조용익, 하인두가 참여했다. 악뛰엘은 총 2회 전시를 개최했다.
2회에 걸친 60년미술가협회의 전시는 화풍상 어떠한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현대미협과 연합하여 두터운 마티에르, 격렬한 붓질 등 앵포르멜적인 작품으로 전시회를 개최함으로써 앵포르멜 화풍은 시대를 대표하는 화풍으로 인식될 수 있었다. 특히 당시 젊은 세대의 공감을 얻어 1960년대 초반의 한국화단에 마티에르를 강조하는 앵프로멜 화풍으로 쏠림현상이 유도되었다. 두 단체가 연합한 악뛰엘 회원전은 1964년에 제2회 전시로 막을 내렸지만, 이들은 이후 화단의 중심세력으로 자리잡게 된다.
제1회 60년전 전시 브로셔와 당시의 가두전에 관한 일간신문의 단편적 기사 이외의 기초 사료가 남아 있지 않아 연구에 한계가 있다. 제2회는 현대미협과 연립전을 열었는데, 연립전 브로셔가 남아 있다. 브로셔에는 전시 참여작가 명단과 선언문이 실려 있는데 선언문은 1959년 11월 현대미협 선언문의 내용을 재수록한 것이다.
60년미술협회는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 출신들이 연합하여 단체를 결성함으로써 기성세대의 학연 중심으로 분리되던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다. 스스로 시대의 반역아(叛逆兒)가 되고자 했던 이들은 앵포르멜이라는 새로운 화풍을 구사하면서 기성의 아카데믹한 화풍은 물론 정형화된 추상에서도 벗어나고자 했다. 저항적이고 보다 자유로운 화단 분위기가 형성되었지만, 이들의 세력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앵포르멜 화풍을 구사하는 작가들이 지나치게 많아졌고 결국 1960년대 초반 한국 화단의 다양성을 차단하는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