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석오 ()

조각
인물
해방 이후 북한에서 조선미술건설본부 조각부 위원, 북조선예술동맹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조각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4년 1월 27일
사망 연도
1973년 10월
출생지
평안남도 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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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북한에서 조선미술건설본부 조각부 위원, 북조선예술동맹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조각가.
개설

평안남도 평원에서 화가 문화선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고, 문석오의 딸 문정숙과 아들 문성윤 역시 북한에서 조각가로 활동했다.

생애

평양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교원양성소를 거쳐 상수보통학교에서 1년간 교원으로 근무하다가 1928년에 일본 도쿄미술학교 조각과에 입학하였고 1932년에 졸업했다. 김복진, 김두일에 이어 세 번째로 조각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 유학을 갔던 인물이며 졸업 후에는 주로 평양과 해주에서 활동을 했다. 광복 이후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의 산하단체인 조선미술건설본부에서 이국전, 윤승욱 등과 함께 조각부 위원으로 활동했다. 1946년에 결성된 조선조각협회의 창립위원으로 참여했다. 분단 이후 북에 남아 북한에 수립된 정권 아래서 조직된 북조선예술동맹의 부위원장, 중앙상임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다수의 김일성 동상과 천리마동상 등을 제작한 공훈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활동사항

1929년 대학 재학 중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소녀흉상」을 출품하여 입선했고, 1930년에 「서있는 여인」라는 여성 전신 누드상을, 1931년에는 「소녀흉상」을 출품하여 연이어 입선하였다. 1931년에는 일본 관전인 제국미술전람회에 「응시」라는 여성누드상을 출품하여 입선했다. 앞으로 내민 다리와 팔의 움직임으로 생기가 느껴지며, 1년 전에 조선미전에 출품했던 「서 있는 여인」에 비해 인체의 볼륨감이 강조되어 있다. 1932년부터 1934년까지 3년동안 조선미술전람회의 ‘조각부’가 폐지되었다가 1935년에 ‘조소부’로 부활하는데, 이때 문석오는 「수(首)」(1935년)를 출품하여 입선하였다. 나이든 남자의 사실적인 얼굴 표현에서 작가의 뛰어난 모델링 솜씨를 확인할 수 있다.

1932년문석오가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백선행여사(白善行女史)」의 흉상을 제작하였다. 이 동상은 백선행여사가 평양시민에게 공회당을 기부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는데, 평양에 처음 세워진 동상이며 한국인 조각가의 손으로 제작한 첫 번째 동상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동상은 “등신(等身)보다 이분(二分)가량이 큰 흉상으로 길이는 삼척(三尺)가량”이었으며, 머리에 수건을 쓰고 털배자를 입고 있는 모습이었다. 당시 평양에는 동상을 제작할만한 장비가 없었기 때문에 백선행여사의 사진을 가지고 문석오가 동경에서 가서 제작했으며 제작기간은 약 3개월이 소요되었다. 김복진이 1935년에 출옥하기 이전까지 선두적인 역할을 했으며, 평양과 해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문석오는 광복 이후에는 북한에서 김일성동상을 비롯하여 각종 선전용 조형물 제작에 참여했다.

상훈과 추모

1929년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소녀흉상」 입선

1930년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서있는 여인」 입선

1931년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소녀흉상」 입선

1931년에 일본 제국미술전람회에 「응시」 입선

1935년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수(首)」 입선

참고문헌

『조선력대미술가편람』(리재현, 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9)
「분단 50년, 월북미술인 68인의 행적」(이구열, 『월간미술』, 1998)
「기획연재 5. 20세기 전반기 조각가들 :1920-30년의 장기남과 문석오」(최열, 『미술세계』통권 123호, 1995)
「20세기 전반기 조각가들 6. 문석오의 시대」(최열, 『미술세계』통권 124호,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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