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황해도 신천(信川)에서 출생하였고 1959년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했다. 같은 해인 1959년 제8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으로 약칭)에 「패배자」라는 작품으로 문교부장관상을 받으면서 미술계에 데뷔했다. 이 작품은 현존하지는 않지만 석고 인물상이었다. 좌절감과 패배의식으로 얼굴에 손을 대고 울고 있는 인물로, 전후(戰後) 사회의 비극적인 현실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후 1960년 국전에서 특선한 「패배자의 딸」을 비롯하여 「미망인」, 「위증인」, 「이단자」, 「허수아비」 등 현실비판적이면서 실존주의적 의식이 녹아 있는 작품들을 제작했다.
1963년과 1964년 국전에 각각 출품했던 「어느 금요일의 변신」과 「공동」은 고철을 이용한 추상적인 용접조각인데, 역시 전후의 불안의식이나 실존주의적 시대의식이 담긴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다. 1964년의 원형회 단체전에 출품했던 「원자시대 사람들」은 고철이나 일상의 오브제를 불규칙하게 이어붙인 작품으로, 핵폭격에 의해 모든 것이 폐허된 상태를 표현하기도 했으며, 이후에도 현실비판적인 작품들을 다수 제작했다. 오종욱은 17세의 어린 나이에 6∙25전쟁에 참전했는데, 자신이 팔에 관통상을 입자 도움을 주던 전우가 자신의 눈앞에서 총에 맞아 죽게 되었던 상황은 평생 그를 짓눌렀고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1961년에 국전 추천작가, 1962년에 국전 초대작가, 1973년부터 1980년까지 국전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조각가 단체였던 원형회 전시를 통해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1968년부터는 현대공간회 창립회원으로 활동했다. 1962년부터 1969년까지 조선일보사 주최 한국현대작가초대전에 출품했고 1981년부터 1990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주최 현대미술초대전에 출품했다. 1971년에 상파울로비엔날레에 출품했다. 1976년에 신세계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1989년에 대구 이목화랑과 1991년에 서울 이목화랑에서 각각 개인전을 열었다. 인천교육대학교와 경북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