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사 미륵전 본존상 ( )

조각
작품
조각가 김복진이 1935년에 제작한 장륙 불상.
정의
조각가 김복진이 1935년에 제작한 장륙 불상.
제작시기

1935년 3월 9일 밤에 부주의로 인한 화재로 금산사 미륵전의 본존불상이 불에 타 앞으로 넘어졌다. 사찰의 전언에 의하면, 이 불상은 솥을 엎어 대좌로 사용한 입불상이었는데, 사람들이 동전을 그 위에 던지곤 하였다고 한다. 어느 날 동자승이 그 동전을 주우려고 밤에 촛불을 들고 법당에 들어갔다가 그만 실화로 중앙 본존불이 불에 탔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언에는 미륵전에서 불공을 드리던 사람들이 실화한 것이라고도 한다.

중앙의 본존불상을 재건하기 위하여 1935년 9월 25일 기부금 모집원을 당국에 제출하여 3만 5십 원의 허가금액을 받았다. 하지만 곧 예산변경원을 제출하여 10월 27일에 2만 1천 6백원의 허가를 받았지만 실제 모금액은 1만 6천여 원이었다.

『금산사지』에는 “주지 황성렬사가 해광 김극인, 삼능 조영찬, 보응 김시택, 법운 국창용, 내장사 주지 매곡 정봉모, 구암사 주지 일헌 김종렬, 신사 김수곤, 비구니 유지승 등의 조력을 자(藉)하여 가산거사 김수곤 등 대방단가의 시금 1만 6천여 원을 수하여 양공(良工) 김복진에게 명하여 소화 13년 9월 3일로서 소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1936년 7월 5일자 『동아일보』에는 「38척의 불상, 김복진 씨 제작중-2백70일 동안 1만 4천원을 들여」라는 기사에서는 제작 기일과 순금 금박 6천원어치를 포함한 제작비가 소요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위 두 기록을 비교하여 보면 제작 연도에서 큰 차이가 있다. 『금산사지』에서는 소화 13년, 즉 1938년 작이라 하였다. 그러나 1935년 12월경 착수하여 1936년 9월 3일 낙성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1936년 7월 29일자 동아일보에는 여전히 모금 중인 상황이 전해지고 늦어도 가을에는 건립식을 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이 미륵불상에 대해서 『증산도 도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한다. 밤에 금산사 미륵전에서 불공을 드리던 사람들이 실수하여 장륙미륵불상에 화재가 일어났는데 좌우 시립한 보살상과 미륵전은 화마를 피하였으나 가운데에 서 있는 미륵불만 불에 타서 왼쪽으로 넘어졌다. 장공 김복진(金復鎭)이 조각을 시작한 지 2년 9개월 만에 완성하여 무인년(戊寅年 : 1938년) 9월 3일에 육장 반(六丈半)의 미륵불을 모셨다는 것이다. 이 소조불상은 작가 스스로 ‘서울에서 만들었다’고 하였으므로 서울에서 만들어서 기차로 운송하여 현지에서 조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용

근대 조각가 김복진이 제작한 이 불상은 11미터가 넘는 대형의 장육불상이다. 정면을 향하여 있으며 좌우에는 조선 인조대에 만들어진 협시보살이 있다. 머리 정상에는 붉은 색 계주가 표현되어 있으며 머리는 나발이다. 귀는 양쪽으로 늘어져 있으나 긴 편은 아니며 반개한 눈에 근엄한 표정이다. 몸에는 통견을 둘렀으나 양쪽 가슴이 길게 늘어져 보이고 왼손은 앞으로 들어 보주를 들고, 오른손은 들어 시무외인을 하고 있다. 두 다리는 치마 아래로 윤곽이 드러나 보이고, 아래로 지그재그의 옷주름이 다리 사이를 관통하고 있으며 양손 아래로 내려온 소매의 주름도 지그재그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도상은 파괴되기 전의 불상을 참고로 제작한 것이며, 얼굴 표정과 손가락의 표현 등에서는 전통적인 조각과 달리 신식 조각가로서 인체의 특성을 불상에서 구현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 불상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조각가인 김복진이 남긴 작품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불교상 제작을 신식의 조각가에게 의뢰하였던 당시 상황을 알 수 있으며 소조불상을 서울에서 만들어 김제 금산사까지 기차로 우송하였던 것은 미술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작품은 소실 전 그 자리에 있던 불상 사진을 보고 제작하였으므로 원안에 충실하였으나 얼굴 표정이 조금은 어둡고 가슴팍의 근육이 아래로 늘어진 점 등은 일본에서 작가가 불교상을 제작할 때 영향받았던 점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당당한 자세나 유려한 선의 흐름, 수직이면서도 유연하게 위로 솟은 듯한 몸체의 율동감 등은 근대조각의 한 면모를 보여준다. 특히 마디가 길고 고운 대개의 전통 불상에서 보는 것과 달리 인체와 유사한 손의 표현은 도상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창작의 힘을 발휘하는 예술가가 조성한 불교상임을 보여준다. 불교라는 종교조각에서뿐만 아니라 근대조각가 김복진이 제작하고 진행한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작품으로서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김복진연구』(윤범모, 동국대출판부, 2010)
『김복진의 예술세계』(이경성 외, 얼과알, 2001)
『백제조각과 미술』(공주대학교박물관, 1992)
집필자
조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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