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말선초의 구결로 추정되는 능엄경 자료는 학계에 보고된 것만 10종이 넘는다. 이 중에서 ‘박동섭 소장본’, ‘남권희 소장본’, ‘기림사 소장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보물, 1984년 지정)’ 등이 양질의 음독구결 자료로 꼽힌다.
1127년의 간기(刊記)를 갖고 있는 중국 판본이다. 간기를 그대로 믿기는 어렵지만 매우 이른 시기의 판본임은 확실하며, 이 자료에 기입된 음독구결은 늦어도 13세기 후반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자료의 구결에는 100자 가까운 구결자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단일 자료로 가장 많은 구결자가 사용된 예에 속한다. 또한 ‘, , , 行, ’와 같이 다른 음독구결 자료에서 보기 힘든 구결자들도 사용되고 있으며, ‘者(란), 則(란), 則(온), 則(면), 故(은ᄃᆞ로)’와 같이 전훈독자(全訓讀字)들도 나타난다. 이 자료에는 청자존대를 나타내는 ‘-다’의 직접 소급형인 ‘-, -, -’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는 ‘-ᅌᅵ다’가 표기된 가장 이른 시기의 용례이다. 또한 어간과 ‘-샷다’ 사이에 ‘-거/어-’가 개입한 ‘(ᄒᆞ여샷다)’, ‘(ᄒᆞ야샷다)’, ‘(커샷다)’가 나타나며, 선어말어미 ‘–거-’에 대응하는 ‘–(고)-’의 용례들도 확인된다.
13세기 간행본으로 추정되는 자료로, 여기에 기입된 구결도 13세기 말엽의 것으로 추정된다. ‘박동섭본’보다 표기법이 정제되어 있는 것이 특징인데, ‘ᅌᅵ’를 일관되게 ‘’로 표기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특징적인 문법 현상으로는 선어말어미 ‘–거-’의 활발한 사용을 들 수 있는데, ‘-거-’ 결합형 중에는 15세기 국어에서는 확인하기 어려운 결합들도 다수 확인된다. 또한 박동섭본과 마찬가지로 ‘-거-’에 대응되는 자리에 ‘–고-’가 나타나는 형태들도 나타나는데, ‘(고ᅀᅡ)’, ‘(고ᄃᆞᆫ)’, ‘(고시ᄃᆞᆫ)’은 후대 자료에서는 ‘거ᅀᅡ’, ‘거ᄃᆞᆫ’, ‘거시ᄃᆞᆫ’으로 나타난다. 이 밖에도 ‘(ᄒᆞ며히)’, ‘(코ᄇᆞᆯ라)’, ‘(홀저긔)’, ‘(ᄒᆞ니다샤가)’, ‘(ᄒᆞ다샤가)’와 같이 희귀한 구결들도 확인된다.
현재 2권, 3권, 4권만 전한다. 이 자료는 다음에 소개할 ‘국립박물관 소장본’(1401년)과 동일한 판본이나, 여기에 기입되어 있는 구결은 ‘국립박물관본’보다 고형의 구결을 갖고 있다. ‘기림사본’의 구결은 ‘박동섭본’과 남권희본‘의 구결과 유사한 점도 많지만, ‘/(코ᄇᆞᆯ라)’, ‘(ᄒᆞᇙ저긔)’와 같은 형태가 보이지 않는 등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한편 ‘소’를 표기하는 데 ‘(所)’의 초서체를 사용했다는 점과 ‘利, 羅, 印, 生’와 같은 정자체(正字體) 구결이 많이 사용된 점, 그리고 2인칭 의문형어미가 ‘(ㄴ뎌)’로 나타나는 것도 주요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1984년 보물로 지정된 자료로, 1401년(태종1년)에 간행되었다. 전체 10권 5책으로 되어 있고, 권근(權近)의 발문을 제외하고 책 전체에 빠짐없이 구결이 기입되어 있다. 구결자 표기에 있어서 ‘>(라), >(로), >(이), >(며), >(샤)’로의 변화가 반영되어 있고 ‘기림사본’까지 사용되던 ‘(ᄒᆞ며히)’가 ‘(ᄒᆞᆫ대)’, ‘(ᄒᆞ면)’, ‘(ᄒᆞ면)’ 등으로 교체되어 있으며, ‘(ᄒᆞ여샷다)’, ‘(ᄒᆞ야샷다)’ 등이 거의 보이지 않고 이들이 ‘(샷다)’, ‘(엇다)’, ‘(옷다)’로 교체된 사실만 보아도 앞선 자료들보다는 후대의 구결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乃(내ᅀᅡ)’, ‘則(란대)’와 같이 전훈독자(全訓讀字)가 사용된 점이나, 조건절에 ‘(혼여긔)’, ‘(호ᇙ자긔)’가 사용된 점, 명사구 나열에 사용된 ‘(여)’와 아우름 표현의 ‘(호ᇙ)’이 사용된 점, 동명사어미의 명사적 용법이 확인된다는 점, 비유구문에 ‘-(다ᄒᆞ)’가 나타난 점과 회상법 선어말어미 ‘-더-’를 ‘(드)’를 이용해 표기한 점, ‘응지(應知)’나 ‘당지(當知)’로 시작하는 구문의 도치된 목적어절에 ‘(은ᄃᆞᆯ여)’, ‘(은ᄃᆞ여)’가 나타난다는 점은 여말선초의 구결의 특징을 충분히 보여준다.
『능엄경』 구결은 고려시대 석독구결을 잇는 고형의 문법 형태들이 대거 확인된다는 점에서 여말선초의 음독구결 자료 중 가장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더욱이 능엄경은 1462년에 간행된 언해본까지 전하고 있어 능엄경 구결의 해독에 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른 언어적 변화까지 관찰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