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덕사 영산전 석조 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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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덕사 영산전 석조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청도 덕사 영산전 석조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조각
유물
문화재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덕사 영산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시대 석조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덕사 영산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시대 석조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개설

2007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석조여래상 높이 92.7㎝, 미륵보살좌상(좌) 높이 82.5㎝, 제화갈라보살좌상(우) 높이 76.5㎝. 주구산에 위치한 덕사 영산전(靈山殿)에 봉안되어 있는 석조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으로 모두 21구이다. 본존불상인 석가여래상 내부에서 발원문이 발견되어 1678년 조각승 승호(勝浩)가 이 불상들을 제작하였음이 밝혀졌다.

석가여래상과 미륵보살상·제화갈라보살상으로 구성된 석가여래삼존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상을 포함한 십육나한상, 사자상 2구가 대칭을 이루며 배치되었다. 이들 존상들은 방형의 큰 얼굴, 짧은 신체, 평면적인 옷주름 표현, 불석 재료 등이 주목되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내용

석가여래상은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고 오른손은 무릎 위에 가지런히 내려놓은 손 모습을 취하였다. 방형 얼굴에 상반신이 짧고 무릎이 높은 신체 비례를 보여 안정감이 있다. 큰 얼굴에 표현된 반듯한 이마, 넓은 미간, 눈꼬리가 올라간 긴 눈, 짧고 날렵한 코, 입술이 얇고 꽉 다문 입 등에서 근엄하고도 다부진 인상을 보인다. 착의법은 대의를 오른쪽 어깨 위로만 살짝 둘러 오른팔을 드러낸 변형 편단우견식이며 가슴 아래로 연판형으로 주름진 승각기, 다리와 다리 사이에 부채꼴로 펼쳐진 옷주름, 발목 부분에 마주하는 옷자락의 안쪽 단이 바깥으로 접혀 특징적이다.

높은 보관을 쓴 보살상들은 한 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엄지와 중지를 마주하고 다른 한 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앉아 있으며 얼굴 표현은 본존불과 유사하다. 착의법은 대의와 편삼을 입은 변형통견식이고 옷주름은 본존불과 비슷하게 표현되었다.

삼존상 좌우로 서있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는 어린아이와 같은 짧은 신체비례를 보인다. 늙은 가섭은 양손을 포개어 움켜쥐었고 민머리에 눈썹과 콧수염을 하얗게 채색하여 표현하였다. 그리고 아난은 합장을 한 모습으로 민머리를 녹색으로 채색하여 젊음을 표현하였다. 두 존상 모두 백색의 장삼 위에 가사를 걸쳤으며 왼쪽 어깨 부분에 가사를 고정시키는 둥근 장식이 보이고 늘어진 소맷자락 옷주름을 세밀히 표현하는 등 석조 재질임에도 조각술이 뛰어나다. 나머지 나한상들은 좌상이며 손에는 사자, 호랑이, 서수, 새 등의 동물이나 연꽃가지, 죽비, 염주, 경책, 붓과 두루마리 등 다채로운 지물을 지닌 모습이다.

석조여래상 내부에서 발견된 발원문에는 제작시기, 시주자, 제작에 관여한 사람 등이 기록되었다. 시주자 명단의 경우 시주물목을 구분하여 시주자명을 적고 있다. ‘釋迦主大施主(석가주대시주) 李(이)□□’, ‘彌勒大施主(미륵대시주) 李(이)□音(음)□ 兩主(양주)’, ‘竭羅大施主(갈라대시주)…’ 등 각 존상마다 시주한 사람을 따로 명기하고 시주자의 경제력에 따라 차등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존상 명칭도 확인할 수 있는데, 처음 영산전 불상군이 조성될 당시에는 현존하는 존상 외에도 판관상과 제석천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작에 참여한 조각승으로 수두화원(首頭畵員) 승호 아래로 상윤(尙倫), 상정(尙淨), 여잠(呂岑), 천택(天擇), 탁헌(卓獻), 청안(淸眼), 자일(自日), 덕장(德莊), 덕현(德玄) 등이 명기되었다. 이들 조각승 집단은 덕사의 명부전 불상들을 조성한 조각승과도 대부분 동일하다.

조각승 승호는 경상남도 거창 심우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2010년 지정) 조성에 청허(淸虛)의 보조 화승으로 처음 이름이 등장한다. 또한 1655년 도우(道祐)의 차화승이 되어 경상북도 칠곡 송림사 석조아미타여래삼존상(보물 , 2009년 지정)을 제작하였다. 1678년 6월에는 청도 덕사 영산전 불상군을 조성하며 처음으로 우두머리 조각승으로 등장하였고 같은 해 7월에 동일 사찰의 명부전 석조지장삼존상 및 시왕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007년 지정)을 제작하였다. 이후 승호는 1684년 장안사의 응진전 석조석가삼존십육나한상(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2008년 지정)과 명부전 석조지장시왕상(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2008년 지정), 1688년 군위 인각사 석조석가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을 조성하는 등 17세기 후반기 경상도 지역에서 석조상 전문 조각승으로 활발히 활동하였다.

의의와 평가

청도 덕사 영산전 석조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은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조각승 승호가 처음으로 우두머리 조각승이 되어 조성한 불상으로 조성 시기, 제작자, 봉안 장소 등이 명확하여 자료적 가치가 높다. 또한 17세기 중·후반기 경상도 지역에서 유행했던 불석(佛石) 재료로 만든 석조 불상 가운데 하나로 불석제 불상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승호의 조각승 계보와 17세기 영산전에 군집형으로 등장하는 불상군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한국의 사찰문화재』대구·경북Ⅰ(문화재청·(재)대한불교조계종 유지재단 문화유산발굴조사단, 2007)
「17세기 후반 영남 조각승 승호 작 나한상 연구」(김희경, 『미술사와 문화유산』, 명지대학교 문화유산연구소, 2012)
「17세기 후반 조각승 승호의 활동과 불상 연구」(최선일, 『선문화연구』8, 한국불교선리연구원, 2010)
「조각승 승호가 제작한 불상」(김길웅, 『문화사학』27, 한국문화사학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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