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대 후반에는 대대적인 문화 정리 사업이 추진되었는데, 그 결과 여지고가 포함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가 완성되었다. 신경준은 『도로고(道路考)』를 저술함으로써 도로에 대한 정보량을 늘렸다. 도로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지도를 통해서도 제공되었다. 도로의 중요성은 더욱 증대되었고,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시의성 있는 문헌자료 등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정조는 육로와 해로를 망라하는 종합적인 정리 작업을 시도했다.
책의 서문이 『홍재전서(弘齋全書)』에 실려 전한다. 이 책은 1797년(정조 21) 2권으로 만들어졌다. 책의 실물이 전하지 않아 자세한 서지 사항은 알 수 없다.
『도리총고(道里摠攷)』는 정조가 육로와 해로를 불문하고 도로에 관한 모든 정보를 종합 정리한 지리서이다. 이 책은 가탐(賈耽)의 『군국지(郡國志)』에 따라 전국 각 군현의 경계를 표시하였으며, 상흠(桑欽)의 『수경(水經)』에 따라 연해 지방에 이르는 노정을 기록했다. 또 모원의(茅元儀)의 『변방고(邊防考)』를 참고하여 봉수(烽燧)와 역발(驛撥)의 위치를 기록하였다. 그 외에도 조석(潮汐)의 차이, 풍우(風雨)의 기후, 시장(市場)의 이름까지 빠뜨리지 않고 기록하였다.
육상과 해상을 막론하고 교통망이 대폭 확충된 것은 18세기 이후의 일이었다. 상업적 이익을 위해 민간인들이 먼저 도로를 개척해 나갔다. 고조되고 있던 상업적 분위기 속에서 해상 유통망도 정비되었다. 다양한 선박들이 만들어지고 항해술과 조선술이 개선된 결과, 정조 시기에 이르면 전국 연해 지역권을 묶는 해로 유통권이 성립되기에 이른다.
도로에 대한 변화된 인식은 도로 관련 지리 정보의 양과 질을 크게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각 군현 간의 거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도리표가 유행한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도리표가 조선전도나 도별도, 혹은 산경표 등과 결합하는 양상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리총고』는 정조가 이런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 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