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계도(西北界圖)』는 『황여전람도(皇輿全覽圖)』의 만주지역 지도와 정상기형(鄭尙驥型) 동국지도를 결합하여 필사한 분첩 절첩식 지도로, 정조시기 혹은 그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의 크기는 140.0×135.0㎝이다.
만주지역 지명들은 대부분 만주어를 한자로 음차한 것들이다. 필사자가 만주어에 대한 소양이 없었던 듯, 곳곳에서 오자와 탈자가 있다. 그러나 지리 정보의 수준은 『성경지(盛京志)』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특히 역참(驛站)과 도로망에 대한 정보가 상세한 편이다. 여백의 설명문은 만주의 주요 산천, 도시의 사방 영역과 각 장군들의 관할 범위, 변문의 위치와 소속, 성경의 연혁 등에 관한 것으로 채워져 있다.
도면상에는 두만강 위를 흐르다가 온성부 인근에서 두만강과 합류되는 물줄기가 있다. 두 강이 만나는 자리에 분계강(分界江), 건을가퇴강(件乙加退江)이 보인다. 후춘강(後春江)의 발원처 가까운 곳에 선춘령(先春嶺)이 표시되어 있고, 그 옆으로 ‘고려계비거경원육백리(高麗界碑去慶源六百里)’라고 되어 있다.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에서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西北彼我兩界萬里一覽之圖)』에 이르기까지 만주지역 지리 정보는 모두 『성경지』에서 가져온 것인데, 이 지도에 이르러 비로소 『성경지』와는 질적으로 다른 『황여전람도』 계통의 지리 지식이 활용되기 시작했다. 지도 제작 기법상 방안도법과 분첩 절첩식의 아이디어가 처음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유일본으로 전하고 있다. 『황여전람도』는 일본에 전래되어 많은 사본이 제작되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강희제 때 간행된 『황여전람도』의 사본이 일부 보관되어 있고, 국립 중앙도서관에도 관련 자료가 남아 있으나, 형태와 밀도 모두 이 지도와는 같지 않다.
『서북계도』는 조선 후기에 『황여전람도』가 유입되어 활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의가 있다. 『황여전람도』를 그대로 따라가지 않고 그 위에 전래의 영토의식을 계승하려 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온성부에서 두만강에 합류되는 물줄기를 백두산에서 흘러내리지 않는 것으로 묘사한 것은 『황여전람도』를 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계강이나 선춘령 등을 표시한 것은 조선의 인식에 따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