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청량사 건칠 약사여래 좌상 및 복장유물 ( )

조각
작품
문화재
경상북도 봉화군 청량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건칠약사여래좌상과 복장유물.
작품/불상
창작 연도
통일신라시대
소장처
대한불교조계종 청량사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보물(2016년 11월 16일 지정)
소재지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247 청량사
내용 요약

봉화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奉化 淸凉寺 乾漆藥師如來坐像 및 腹藏遺物)은 경상북도 봉화군 청량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건칠약사여래좌상과 복장유물이다. 건칠 기법으로 만든 약사여래좌상과 그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 및 일괄 유물이다. 건칠약사여래좌상은 양식적으로 통일신라 8세기 후반 석굴암 계통의 불상을 강하게 잇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칠불상으로, 불교조각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복장에서 발견된 다양한 유물들을 통해 불상의 중수 시기와 횟수, 참여자들을 알 수 있어서 문화사적 · 미술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정의
경상북도 봉화군 청량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건칠약사여래좌상과 복장유물.
내용

경상북도 봉화군 청량사에 소장된 주1 기법으로 만든 약사여래좌상(藥師如來坐像)과 그 복장(腹藏)에서 발견된 주2 및 일괄 유물은 전체 19건 208점이다.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은 흙으로 형태를 만든 뒤, 그 위에 삼베를 입히고 칠을 바르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서 일정한 두께를 얻은 후 조각하여 만든 주3이다.

청량사의 원래 이름은 연대사(蓮臺寺)로, 건칠약사여래좌상은 오래 전부터 중심 전각인 유리보전(琉璃寶殿)에 주존불(主尊佛)로 봉안되어 온 것으로 추정된다.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은 양식적으로 통일신라 8세기 후반 석굴암 계통의 불상을 강하게 잇고 있다.

형태 및 특징

불상의 전체 높이는 90㎝, 주4의 높이는 35.6㎝이고, 어깨의 폭은 54.2㎝, 무릎 폭은 72.5㎝이다. 불상은 주5주6에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결하였고, 당당하고 넓은 어깨에 균형 잡힌 신체를 지녔으며, 가슴과 팔, 다리가 매우 양감이 풍부하게 표현되었다.

왼쪽 어깨 부분에서 주7가 넓은 띠처럼 나타난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불상의 표현은 석굴암 주8 계통의 도상 및 형식, 양식적 특징을 매우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불상이 처음 제작된 배경에 대한 기록이 전하지 않아서 정확한 제작 시기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석굴암 본존불의 특징을 충실히 잇고 있다는 점에서 8세기 후반 이후, 통일신라 전성기 무렵에 제작된 작품일 것으로 추정된다.

흥미롭게도 건칠불상에 대해서 과학적 조사방법을 통해 제작 시기를 알아보기 위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두 차례에 걸쳐 바탕층 삼베에 대한 방사선 탄소연대 측정법을 실시하였다. 측정 결과, 이 불상의 제작 연대는 770~945년 정도로 추정되었다.

따라서 불상의 형식 및 양식적 특징과 과학적 방사선 탄소연대 측정 결과를 종합하여 고찰할 때, 적어도 8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전반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93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해인사 소장의 건칠희랑대사좌상(乾漆希朗大師坐像)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칠불상임을 알 수 있어서, 우리나라 불교 조각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불상으로 평가된다.

건칠약사여래좌상의 복장에서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중수 과정에서 납입된 발원문 4점과 주9, 산스크리트어로 된 『다라니경』 등 전적류(典籍類), 금강계만다라(金剛界曼茶羅) 등 모두 19건 208점에 이른다.

이 중 1560년(명종 15) 중수 때 납입된 「천인동발원문(千人同發願文)」은 처음 만들어진 후,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 중수된 기록을 담고 있어서 중요하다. 전적류 중 『삼십칠존종자만다라팔엽일륜(三十七尊種字曼陀羅八葉一輪)』은 고려의 시중(侍中)이었던 최종준(崔宗峻)이 1239년(고려 고종 26)에 넣은 것으로 되어 있어서, 이 시기 불상의 중수가 한 번 더 이루어졌을 것임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의의 및 평가

봉화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은 이르면 8세기 후반, 늦어도 10세기 전반경에는 조성된 것으로, 930년경으로 추정되는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과 더불어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건칠불상으로, 우리나라 불교 조각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불상이라고 할 수 있다.

방사선 탄소연대 측정 결과도 이 상의 제작 시기를 뒷받침하고 있어서, 현대 과학적 조사방법과 미술사적 조사방법을 접목하여 성공적으로 연대를 추정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복장에서 발견된 다양한 유물들로 당시 불교 경향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 특히 다양한 시기에 조성된 복장유물과 발원문들은 불상의 중수 시기와 횟수, 중수에 참여한 이들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불교사적 · 미술사적 · 문화사적 가치도 매우 높다. 2016년 11월 16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논문

정은우, 「봉화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의 특징과 제작시기 검토」(『미술사연구』 32, 미술사연구회, 2017)
임남수, 「청량사 전약사여래좌상고」(『민족문화논총』 43,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09)

인터넷 자료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www.heritage.go.kr)
주석
주1

불상 위에 삼베와 옻칠을 계속 겹쳐 바르는 기법을 의미하며, 중국에서는 '협저(夾紵)', 한국에서는 '칠포(柒布)' 등으로 명칭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건칠불상들은 대부분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로 최고의 전성기는 14~15세기이다.

주2

신이나 부처에게 소원을 비는 내용을 적은 글.    우리말샘

주3

옻칠이나 베 혹은 종이를 여러 겹 둘러 조형된 불상

주4

부처의 머리.    우리말샘

주5

상대편에게 공경의 뜻을 나타내는 예법의 하나. 왼쪽 어깨에 옷을 걸치고 오른쪽 어깨는 드러낸다.    우리말샘

주6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의상에 나타내는, 파도 모양의 늘어진 형상이나 주름.    우리말샘

주7

설법을 하거나 걸식할 때에 입는 승려의 옷. 삼의(三衣) 가운데 가장 큰 것을 이른다.    우리말샘

주8

으뜸가는 부처라는 뜻으로, ‘석가모니불’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9

유물 가운데 복장(服藏)을 넣는 통.    우리말샘

집필자
하정민(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