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금산사 석고 미륵여래 입상 ( )

조각
작품
문화재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대형 미륵여래입상.
작품/불상
창작 연도
1936~1937년
작가
김복진(金復鎭)
소장처
금산사
국가등록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국가등록문화재(2014년 10월 29일 지정)
소재지
전라북도 김제시
내용 요약

김제 금산사 석고미륵여래입상(金提 金山寺 石膏彌勒如來立像)은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대형 미륵여래입상이다. 금산사 미륵전에서 화재로 소실된 미륵대불을 재조성하기 위해 1935년 시행한 공모전에 근대 조각가 김복진의 작품이 발탁되어 1937년경 완성하여 금산사 미륵전에 봉안된 대형 불상이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몇 점 되지 않는 김복진의 작품 중 대표작이며, 근대적 기법과 재료로 전통 불상을 조형한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대형 미륵여래입상.
제작 배경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사(金山寺) 미륵전(彌勒殿)에 있던 주존불(主尊佛)이 1934년 3월 화재로 소실되어, 1935년 새 불상을 조성하기 위한 공모전을 개최하였다. 공모전 결과 김복진(金復鎭, 1901~1940)의 작품이 발탁되었다. 이후 1936년 초부터 제작을 시작하여, 1936년 말에서 1937년 초 무렵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내용

1935년 금산사에서 새 불상을 조성하기 위한 공모전을 개최하였다. 공모전은 1m 높이의 축소 모형을 제작하여 금산사에 제출하는 방식이었고, 김복진을 비롯하여 김보응(金普應)[보응(普應) 문성(文性), 1867~1954], 이석성(李石城), 김일섭(金日燮)[금용(金蓉) 일섭(日燮)] 등이 응모하였다. 당시 금산사의 의사 결정자는 주지였던 성열(成烈)과 불상 복원 대시주(大施主)를 자임한 가산거사(迦山居士) 김수곤(金水坤)이었고, 공모전 결과 김복진의 작품이 발탁되었다.

미륵불상을 조성한 시기에 대해 금산사 측의 기록에는 1938년 9월 3일 완성이라고 되어 있으나, 1936년 7월 신문 기사에 형태가 대부분 완성된 사진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1936년 초부터 조성을 시작하여 1936년 말에서 1937년 초 무렵에는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김일섭이 1937년 4월부터 7월까지 완성된 주1을 수리하고, 좌우 협시보살(夾侍普薩)을 개금(改金)하였다.

금산사는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수문(守文)이 재건하여 1635년(인조13)에 낙성하였는데, 좌우 보살상은 전각들의 재건 후인 1635년 무렵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는 약 8.79m이다.

한국 최초의 근대적 조각가로 평가받는 김복진은 일본 도쿄미술학교 조각과를 나와 1924년 일본 주2에 처음 입선하고, 이후 수차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수상하였다. 일본에서 유학한 경험을 바탕으로 석고를 활용한 조각 작품을 다수 제작하였다.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하였다가 1928년부터 6년간 감옥 생활을 하였던 김복진은 1930년대부터 불교에 관심을 두고 불상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미륵불상은 전통적인 불상의 재료인 목조나 석조, 소조로 제작하지 않고, 석고라는 근대적 재료를 활용하여 제작하고 도금(鍍金)한 점이 주목된다.

형태 및 특징

김복진이 금산사 미륵전 본존불로 제작한 불상은 전체 높이가 1,182㎝에 이르는 입상이며, 몸을 곧게 펴고 정면을 바라보는 당당한 모습으로 제작하였다.

낮은 주3에 중간 계주(髻珠)만을 표현하였고, 원만한 주4에 어깨에 닿을 정도의 긴 귀가 눈에 띈다. 오른손은 엄지와 중지를 구부린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취하였으며, 왼손은 손바닥이 위를 향하도록 하고 살짝 오므려 보주(寶珠)를 들고

군의(裙衣)주5 위에 주6만 한 겹으로 두른 모습인데, 넓은 양어깨를 덮고, 오른쪽 가슴 앞에서 여미는 방식으로 착용하였다. 이는 통일신라 8세기 중엽 이후의 금동불(金銅佛)에서 보이는 주7 표현이다. 신체를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옷주름이 몸에 밀착하여 허벅지를 비롯한 신체의 굴곡을 드러내는 표현도 통일신라 불상의 양식을 계승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착의(着衣) 형식과 신체 표현에 대한 관심 외에는 통일신라 불교 조각에서 찾을 수 없는 양식도 보인다. 특히 깊게 파인 대의 위로 노출된 가슴에 가슴의 윤곽을 표현한 것과 허리 부분의 얇은 옷 주름이 다소 번잡하게 보일 정도로 주름 간격이 좁고 몸에 밀착하여 허벅지의 양감을 그대로 드러내는 부분은 통일신라시대 불상보다 일본 헤이안[平安], 가마쿠라[鎌倉] 시대의 불입상(佛立像)과 유사하다. 일본 전국의 사찰에 소장된 이 시대의 불보살상(佛菩薩像)들은 당시 주8 간행의 『제국미술사료』 등의 화집(畵集) 시리즈를 통해 일반에 소개되어 있었다.

김복진은 학생 시절 이러한 자료를 통해 헤이안, 가마쿠라 시대 불상 양식을 가까이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인체의 정확한 파악을 통하여 불상을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스승 다카무라 고운[高村光雲, 1852~1934] 불상의 영향도 엿보인다.

김복진은 미륵불상을 완성하고 3년 뒤인 1939년에도 충청북도 보은군 법주사(法住寺)에 거대한 미륵대불입상을 시멘트를 재료로 조성하는 작업에 참여하였으나, 일부만 만들고 1년여 만에 요절하였다. 이후 이 불상은 1987년에 해체되고 현재의 법주사 금동미륵대불(金銅彌勒大佛)로 대체되었다.

금산사 미륵대불 공모전에 김복진이 제출하였던 축소 모형의 불상은 현재 공주(公州) 신원사(新元寺) 소림원(少林院)에 소장되어 있다.

의의 및 평가

우리나라 근대 시기에 제작되어 제작자와 봉안처 등 조성 관련 내용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불교 조각이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몇 점 되지 않는 김복진의 작품 중 대표작이며, 근대적 기법과 재료로 전통 불상을 조형한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특히 전통적으로 불교 조각승들이 제작하던 관례에서 벗어나, 공모전을 통해 근대 조각가라는 직업을 가진 일반인이 조각한 최초의 대형 불입상이라는 점에서도 매우 의미가 깊다. 2014년 10월 29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금용 일섭(1900~1975)- 근대 부처를 만들다』(국립광주박물관, 2018)
고경 감수 · 신은영 역주, 『金魚 金容日燮의 年譜』(송광사 성보박물관, 2016)
윤범모 · 최열 엮음, 『김복진 전집』(청년사, 1995)

논문

윤범모, 「금산사 미륵전 불상과 김복진」(『한국불교학』 88, 한국불교학회, 2018)

인터넷 자료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www.heritage.go.kr)
주석
주1

으뜸가는 부처라는 뜻으로, ‘석가모니불’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2

1919~1934년에 일본 문부성(文部省)의 산하단체인 제국미술원(帝國美術院)에서 15회에 걸쳐 개최한 관전(官展)이다.

주3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 인간이나 천상에서 볼 수 없는 일이므로 이렇게 이른다. 부처의 팔십수형호(八十隨形好)의 하나이다.    우리말샘

주4

부처의 몸에 갖추어진 용모와 형상

주5

허리 밑까지 내려오는 긴 겉옷. 불상이나 보살의 옷에서 볼 수 있다.    우리말샘

주6

설법을 하거나 걸식할 때에 입는 승려의 옷. 삼의(三衣) 가운데 가장 큰 것을 이른다.    우리말샘

주7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의상에 나타내는, 파도 모양의 늘어진 형상이나 주름.    우리말샘

주8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박물관은 대한제국 황실이 1909년 11월에 서울 창경궁에 개관한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이다. 제실박물관은 1911년 2월 1일 이왕가박물관(李王家博物館), 1938년 4월 이왕가미술관, 광복 이후인 1946년에 덕수궁미술관으로 각각 개편되었다가 1969년 5월 국립박물관에 통합되었다.

집필자
하정민(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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