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은 충청남도 마곡사(麻谷寺)의 화승으로, 속성(俗姓)은 김씨이고 호는 보응(普應)이다. 그는 1867년 지금의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에서 태어나 87세인 1954년에 입적하였다. 10세에 계룡산 갑사(甲寺)에서 출가하여 금호약효(錦湖若效)에게 불화를 배웠다.
문성은 현전하는 작품 100여 점을 통해 1892년부터 입적하기 1년 전인 1953년까지 60여 년간 활발히 활동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스승인 약효가 주석했던 마곡사 일대 외에도 서울·경기 지역 등 전국적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당대 유명했던 고산축연(古山竺演)과 함께 활동하면서 서양화의 음영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였다. 또 전통적인 불화를 제작하면서도 이전의 불화들과는 차별되는 담채기법과 서양화법을 결합한 독특한 불화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문성은 불교진영 등에서 사실적인 화법을 추구하였고, 각종 판화의 모티프들과 당대의 현실감 넘치는 새로운 생활 풍속들을 불화 속에 그려 넣는 등 새로운 도상과 화풍을 도입한 근대기 불화를 대표하는 화승이라고 할 수 있다. 금용일섭(金蓉日燮)과 남산병문(南山秉文)과 같은 화사들이 그의 화맥을 이었다.
대표작으로 구례 화엄사(華嚴寺) 원통전 독성도(1897년), 합천 해인사(海印寺) 대적광전 치성광불도(1925년), 밀양 표충사(表忠寺) 관음전 천수천안관음도(1930년), 서울 흥천사(興天寺) 감로도(1939년), 예산 정혜사(定慧寺) 관음전 노사나불도(1943년)가 있다. 불화 외에도 타 종교인 수운교(水雲敎)의 종교화를 비롯해 불상, 단청 등에 참여하였다. 1949년에는 불교미술연구회를 조직해 체계적으로 현대 불화의 새로운 모색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마곡사에는 2000년 보응불모비(普應佛母碑)가 세워져 그의 공덕과 업적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