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불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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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금산사 미륵장륙상
김제 금산사 미륵장륙상
조각
개념
석가불에 이어 중생을 구재할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을 형상화한 불상.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미륵불상은 석가불에 이어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을 형상화한 불상이다. 미륵불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불교도들에게 널리 신앙되었다. 초기의 미륵불상은 미륵불상만의 특징을 갖추지 못했다. 그러다가 통일신라 전후에 의자에 앉아 있는 의좌상이 도상적 특징으로 확립되었다.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 등이 그 예이다. 이외에 수인 등에서 미륵불상의 특징을 찾을 수도 있다. 미륵불상은 다른 존상에 비해 크게 제작되었다. 관촉사 미륵보살입상 등은 모두 10m가 넘는 초대형 상이다. 미륵불은 미래불로서 불교미술의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졌다.

목차
정의
석가불에 이어 중생을 구재할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을 형상화한 불상.
내용

미륵불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불교도들에게 널리 신앙되었다. 미륵불은 혼탁한 말법시대에 전륜성왕이라는 위대한 지도자가 출현하여 모든 백성을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공평하게 다스리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었을 때 비로소 도솔천에서 화림원 용화수 아래로 내려와 3번의 법회를 열어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는 부처이다. 미륵불상은 『미륵대성불경(彌勒大成佛經)』과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등 하생경전에 근거한다.

초기의 미륵불상은 석가여래나 다른 존상들과 마찬가지로 통상의 불의(佛衣)를 착용하고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의 수인을 짓는 등 미륵불상만의 도상적 특징을 갖추지 못하였다. 차츰 신앙이 세분화 되면서 미륵불상도 다른 불상들과 구분이 필요했고, 미래불로서의 성격을 반영한 미륵불 특유의 모습으로 정립되어 갔다. 중국은 수(隋) · 당(唐) 이후, 우리나라는 삼국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조성된 미륵불상들은 대체로 의자에 앉아 편안히 두 다리를 내린 의좌세(倚坐勢)로 나타나며 이후 이렇게 앉은 의좌상은 미륵불상의 도상으로 확립되었다. 대표적인 조상 예로는 640년경의 삼화령 석조미륵불의좌상이나 통일신라시대의 포항 고석사 마애미륵불의좌상, 고려시대의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의좌세 이외 미륵불상의 특징은 수인에서 찾을 수 있다. 미륵불상의 수인은 미륵보살상과 마찬가지로 미륵하생 때 용화수 아래에서 펼쳐지는 장엄한 세 번의 설법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이른바 용화수인(龍華手印)이다. 용화수의 꽃가지나 꽃 봉우리를 두 손 또는 한 손으로 받쳐 든 형태로 나타나는데, 가지로 표현될 경우 여러 개의 꽃과 봉우리로 구성된 예가 많다. 이러한 용화수인은 인도 굽타시대 말경부터 등장하는 미륵보살상의 도상적 특징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에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본격적인 유행은 고려시대이다.

미륵불상은 크기에 있어서도 다른 존상에 비해 크게 제작되었다. 미륵의 크기에 대해서는 『미륵내시경(彌勒來時經)』과 『관불삼매해경(觀佛三昧海經)』 염칠불품(念七佛品) 등에 “석가불 장육(丈六), 미륵불 십육장(十六丈)”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현존하는 미륵불상의 대부분이 10m 이상의 대형 상으로 조성된 것으로 볼 때 경전의 내용을 충실히 반영하여 다른 존상과 차이를 두었다. 즉 삼국시대단석산 신선사 마애미륵불입상이나 고려시대에 조성된 관촉사 미륵보살입상이나 충주 미륵대원 미륵불입상 등은 모두 10m 이상의 초대형 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륵불상의 협시보살상에 대해 미륵경전에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미륵화상법(彌勒畵像法)에 대해 설하고 있는 밀교경전에는 미륵불의 협시로 법음륜(法音輪)과 대묘상(大妙相)이 등장하고, 조선전기에 간행된 불교 의례집인 「염불작법(念佛作法)」과 1678년에 제작된 청양 장곡사 미륵불괘불탱에서는 대묘상보살(大妙相菩薩)과 법림보살(法林菩薩)이 미륵불의 협시보살로 등장하고 있어 조선시대 이후에는 대묘상보살과 법림보살이 미륵불의 협시보살로 정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구성된 대표적인 삼존상이 김제 금산사 미륵전 미륵여래삼존입상이다.

의의

미륵불은 석가모니불을 뒤를 잇는 당래불이자 미래불로서 불교미술의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졌다. 미륵신앙은 죽어서는 미륵보살이 계시는 도솔천에 태어나 복락을 얻고, 다시 미륵보살이 하생할 때는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나 용화삼회의 법회에 참여하여 구제를 받는 것이 요체이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고 살고 있는 바로 이 땅에 평화로운 불국토를 건설하는 데 있다. 그러하기에 미륵정토사상이 때로는 왕권과 결부되어 강력한 전제권력의 이념적 배경을 제공하였고, 사회변혁을 꿈꾸는 혁명가들에는 혁명과 반란의 원동력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한편 착취와 억압으로 고통 받던 민중들은 곳곳에 자기 자신의 모습을 담은 미륵불을 조성하여 속히 전륜성왕이 치세하는 평화로운 시대가 오기를 갈망하였다.

참고문헌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
『미륵하생성불경(彌勒下生成佛經)』
『관음과 미륵의 도상학』(강희정, 학연문화사, 2006)
「포항 고석사 통일신라 미륵불의상의 최초발견과 그 역사적 의의」(문명대, 『강좌미술사』32, 한국불교미술사학회, 2009)
「고려시대 「미륵하생경변상도」 연구」(손영문, 『강좌미술사』30, 한국불교미술사학회, 2008)
「고려시대 용화수인 미륵도상의 연구」(손영문, 『미술사학연구』252, 한국미술사학회, 2006)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손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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