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운흥사 목조 아미타여래삼존 좌상 ( )

목차
조각
유물
국가유산
대구광역시 달성군 운흥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1653년에 조각승 도우가 제작한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대구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大邱 雲興寺 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
분류
유물/불교조각/목조/불상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2014년 01월 20일 지정)
소재지
대구광역시 달성군 헐티로 1068 (가창면, 운흥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운흥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1653년에 조각승 도우가 제작한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개설

201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아미타여래좌상 높이 148㎝, 좌협시보살상 높이 139㎝, 우협시보살상 높이 139㎝. 달성군 가창면 최정산(最頂山)에 위치한 운흥사의 대웅전에는 아미타여래를 본존으로 관음과 대세지보살상이 좌우에서 협시하고 있는 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아미타여래상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 따르면, 이 삼존상은 1653년(효종 4)에 운흥사의 전신인 최정산 수암사의 불상으로 조성된 것이다. 모든 중생의 성불(成佛)과 왕실(王室) 삼전하(三殿下)의 수명장수를 발원하며, 태호(太浩)스님의 증명 아래 수조각승 도우(道祐)와 보조 조각승 신경(信冏), 경옥(敬玉), 경신(敬愼), 응택(應澤), 설민(雪敏), 옥순(玉淳) 등 7명과 많은 사부대중들이 아미타여래삼존좌상 제작에 참여하였다. 한편 본존불의 대좌 윗면에 기록한 묵서에는 아미타여래와 대세지보살과 관음보살상을 조성하기 위하여 1653년 6월 21일 나무를 벌목하고, 7월 1일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윤7월 27일에 완성하여 점안식을 거행하였다는 내용을 기록하였다.

내용

본존인 아미타여래는 엄지와 중지를 맞댄 설법인을 짓고, 중대 궁판에 용문이 투각된 팔각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하였다. 큼직한 반구형의 머리에는 나발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부착하였다. 육계(肉髻)의 윤곽은 불명확하다. 머리의 중앙과 정상에는 반달모양의 중앙계주와 원통형의 정상계주를 나타냈다. 이마는 넓고 편평하며 이목구비도 뚜렷하다. 고요히 내리뜬 눈은 사바세계를 굽어 살피듯 자비롭고, 양 입가를 살짝 누른 입술은 옅은 미소를 자아낸다. 특히 살집이 풍부한 얼굴에 돌출한 작은 코는 무염이 수조각승으로 제작한 속초 신흥사 목조아미타여래의 여운이 남아 있으나 이에 비해 양감이 다소 줄고 코도 작고 길어졌다.

착의는 이중착의식으로 대의 자락을 오른쪽 어깨에 살짝 걸친 것이 특징이다. 옷주름은 간결하고 힘 있는 철선묘를 위주로 대체로 강약의 변화가 없는 얕은 선을 일정하게 구사하였다. 넓은 가슴에는 꽃잎 모양으로 주름 잡은 군의를 표현하였고, 복부를 볼록하게 표현하여 신체의 굴곡을 드러냈다. 결가부좌한 무릎은 수직에 가까우며, 오른발 아래로 주걱모양으로 드리운 넓은 띠 주름 좌우로 부채살 주름을 밀도 높게 펼쳤다. 이러한 주름 표현은 2년 후에 같은 지역에 조성된 달성 용연사 아미타여래삼존좌상에도 그대로 나타나 조각승 도우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불상의 비례는 신체에 비해 머리가 다소 크지만, 어깨가 벌어지고 무릎은 넓고 깊어 당당한 형태미를 보여 준다. 그러나 이후에 조성된 불상에 비해서는 다소 양감이 절제된 아담한 형태미를 보여 도우의 초기 조각 경향을 읽을 수 있다.

좌우 협시보살상의 개성 있는 얼굴도 본존과 마찬가지로 통통하게 살집이 올라 귀여운 인상을 준다. 착의법도 본존불과 같이 이중착의식(二重着衣式)이며, 가슴에는 불상과 달리 비스듬히 접은승각기가 표현되었다. 보관은 꽃모양으로 능선을 준 2단 보관으로, 보계를 가릴 만큼의 높이에 구름문, 봉황문, 화염문, 화문, 관대 등을 별도로 부착하여 장엄하였다. 두 갈래로 머리를 틀어 올려 보계를 만들었으며, 보관 아래 머릿결을 세밀하게 표현하였다. 양어깨에는 2가닥의 머리카락을 날실과 씨실을 엮듯 머리카락을 엮어 세 갈래로 드리웠고, 이는 스승 무염(無染)과 함께 제작한 속초 신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1651년)의 협시보살상의 보발 표현이나 용연사 아미타여래삼존좌상의 협시보살상의 그것과 유사하다.

손의 위치는 서로 대칭이 되게 표현하고 양손을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처럼 엄지와 중지를 둥글게 맞대고 연봉과 연잎으로 구성된 긴 줄기를 잡고 있다. 특히 관음보살은 가지 끝 연잎 부분에 주구(注口)가 달린 정병을 올려놓아 관음보살임을 나타냈다.

이와 같이 귀여운 얼굴에 당당하고 장대한 신체 비례와 변화가 거의 없는 강직한 선묘, 그리고 주걱모양의 띠 주름을 중심으로 좌우로 밀도 높게 주름을 펼친 무릎 표현 등은 조각승 도우의 조각 특징으로, 그의 스승인 무염의 조각 특징도 엿볼 수 있다.

의의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복장 후령통을 비롯하여 조성발원문, 복장 전적 등 조성 당시의 원형을 갖추고 있어 이 시기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조성발원문을 통해 1653년이라는 정확한 조성시기, 봉안 사찰, 조성 주체, 제작자 등을 알 수 있기 때문에 17세기 불상 연구의 기준이 되며, 벌목(伐木)에서 제작까지의 일련의 공정과정을 기록한 대좌 묵서명을 통해 불상의 제작 과정을 보다 면밀하게 이해할 수 있다.

참고문헌

「조선후기 경상도지역 佛石製 佛像의 등장과 유행」(이희정,『불교미술사학』14,불교미술사학회,2012)
「무염파 출신 조각승 도우와 희장파의 합동작업」(송은석,『미술사와 시각문화』7,미술사와 시각문화학회,2008)
「조각승 무염, 도우파 불상조각의 연구」(문명대, 『강좌미술사』26-1, 한국불교미술사학회, 2006)
문화재청(www.cha.go.kr)
집필자
손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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