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조보살좌상은 군데군데 도금이 벗겨져 옻칠이 드러나 있으며, 보관의 측면은 갈라져 간단한 수리를 해 두었다. 별도로 제작하여 끼운 양손도 모두 약지가 부러져 수리 · 접합해 둔 상태이다.
결가부좌한 이 보살상은 고개와 허리를 약간 숙여 세상을 굽어보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신체에 비해 머리가 크지만, 안정감 있는 높이와 폭, 그리고 깊이를 가진 무릎으로 인하여 전반적으로 균형 잡힌 신체비례를 보인다.
머리에는 꽃 모양으로 능을 준 모판(母板)에 화염 무늬, 국화 무늬 등을 별도로 조각하여 부착한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보관을 쓰고 있다. 보관 정면에는 금속판에 수정을 감입하여 장식하였으며, 관대가 바람에 날리듯 표현되었다. 보관 아래 머리카락은 모발의 가닥을 나누어 빗질하듯 세세히 새겼으며, 뒷면은 가닥을 나누지 않고 모발을 새겼다. 머리의 뒷면까지 세세히 표현한 것은 1612년(광해군 4) 상련대 목조보살좌상, 1615년(광해군 7) 진주 청곡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등 17세기 전반에 조성된 불상에서 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보계는 폭이 좁고 끝이 둥글게 말려 있으며, 귓불을 타고 흘려 내린 굵은 보발은 어깨 위에서 둥근 고리를 이루며 세 가닥으로 드리워졌다.
방형의 얼굴은 턱이 둥글고 양 볼과 턱은 양감이 살아 탄력적이며, 사실적으로 묘사된 얼굴은 고요하고 자비가 충만한 모습이다. 약간 정면을 향해 있는 귀에는 섬세하게 새겨진 꽃 모양의 귀걸이를 부착하였다. 착의(着衣)는 양 어깨를 모두 덮어 내린 통견의로, 불의(佛衣)에 표현된 주름은 불필요한 선을 과감하게 생략하여 요점적이다. 특히 이 보살상은 조선 후기 불 · 보살상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이중 착의법이 아니라 한 장의 대의로 입은 통견 착의법을 보여준다. 목에는 삼도의 표현이 뚜렷하며 가슴에는 수평의 군의 자락이 표현되었다. 길상좌를 취한 무릎은 둥글게 처리하였고, 오른쪽 발가락을 옷자락이 살짝 덮어 내려 인상적이다. 발목에는 한번 접은 띠 주름이 버선코 모양으로 드리워졌고, 그 좌우로 몇 가닥의 사선 주름이 힘차게 펼쳐져 있다. 수인은 오른손은 어깨까지 들어 엄지와 중지를, 왼손은 무릎 위에서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다. 바닥 면에는 방형의 복장공이 있으며, 등에도 5㎝정도 크기의 속 파기용 구멍의 흔적이 있다.
목조보살좌상은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인 평담함과 보살상의 섬세함을 잘 드러내고 있다. 보관의 정면에 부착되었던 수정 장식물, 통견의 착의법 등은 조선 후기 불상에서는 보기 드문 표현기법들이다. 특히 통통한 얼굴과 후덕해 보이는 인상, 보발의 섬세함과 귀 및 귀걸이 등의 표현에서 사실성이 드러나며, 큼직하고 대담하면서 볼륨감 있는 옷 주름의 표현 등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 목조보살좌상은 조선 후기인 17세기 불상 중에서도 작품성이 좋고 다양한 17세기 목조불상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2012년 10월 30일에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