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목조보살좌상은 높이 99.4㎝인 중대형보살상으로, 원래 청련암이 단양군 황정리에 있을 때 아미타여래삼존상 중 우협시로 봉안되었던 것인데, 1954년에 청련암이 현재 장소로 옮겨오면서 본존상은 없어졌고 좌협시 관음보살상은 제천 원각사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제천 원각사 관음보살상이 청련암 보살상과 좌우 손의 위치만 달리할 뿐 거의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아미타여래삼존의 협시보살임을 알 수 있다.
청련암 목조대세지보살좌상은 최근에 만든 연화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였다. 이 보살상은 작은 머리에 긴 허리와 낮은 무릎을 갖추고 있어 늘씬한 신체비례를 보인다. 얼굴은 넓고 편평한 이마를 가졌으며, 양미간에는 백호를 도드라지게 나타내었다. 눈은 가늘게 치켜뜨고 사바세계를 굽어살피듯 그윽하게 표현하였고, 작고 앙증맞은 입술에는 양 입가를 눌러 옅은 자비의 미소를 만들었다. 이와 함께 코 뿌리에서 돌출한 매부리코, 살이 많은 양악과 짧은 턱에서 오는 천진한 얼굴 표정은 17세기 후반에 활약한 단응(端應)의 작품과 닮았다.
머리 정상에는 보계를 둥글게 틀어 올렸으며, 귓불을 돌아 어깨 위로 흘러내린 보발은 어깨 위에서 둥근 고리 모양으로 엮어 앞뒤로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보발의 소재는 불상의 주재료인 목조와는 다른 흙 등 가소성의 재료로 붙인 것이다. 보관은 꽃잎 모양으로 능을 준 모판(母板)에 불꽃무늬, 구름무늬, 봉황무늬 등을 따로 제작하여 꽂아 장엄하였다.
착의는 이중 착의법으로, 상의(上衣) 위에 변형의 편단우견으로 걸친 대의 자락이 어깨에 살짝 걸쳐있다. 불신에는 주름이 거의 없으나, 그나마 표현된 주름도 대부분 간결하고 힘 있는 철선묘(鐵線描)를 위주로 사용하였다. 좁게 노출된 가슴에는 비스듬히 접어 멋을 낸 군의의 끝단이 표현되었고, 그 아래로 두 장의 대의가 W자형으로 교차하여 왼쪽 어깨 뒤로 넘겼다.
결가부좌한 무릎은 둥글게 처리하였고, 왼팔을 덮고 내린 소맷자락이 노출된 오른쪽 발가락을 덮고 짧게 드리워졌다. 오른발 아래로 부메랑처럼 드리운 넓은 띠 주름을 S자형으로 반전을 주었고, 그 좌우에는 입체적인 사선 주름으로 힘 있게 펼쳐졌다. 두 손은 별도로 제작하여 꽂은 것인데,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었고 왼손은 무릎 위에 놓아 각기 엄지와 중지를 둥글게 맞대었다. 손이 신체에 비해 유난히 크며 오른손은 너무 위로 들어 다소 부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이 보살상에서 보이는 신체에 비해 긴 허리, 살집이 많은 양악과 짧은 턱, 평면적인 얼굴, 코 뿌리에서 갑자기 돌출시킨 매부리코, 복부에서 길쭉하게 늘어져 표현된 W자형 주름 등은 조각승 단응이 제작한 예천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1684년)이나 제천 정방사 목조관음보살좌상(1689년) 등과 매우 흡사하다. 단응은 17세기 말경에 활동한 조각승으로, 경상북도와 충청북도 등지에 그의 작품이 많이 남아 있어 이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펼친 조각승으로 확인된다.
청련암목조보살좌상은 부자연스러운 오른팔과 유난히 큰 손, 각이 진 방형의 작은 얼굴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의 표현, 배 밑으로 퍼진 W자형의 두 겹으로 된 옷자락 등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은 조선 후기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에 활동한 단응이나 탁밀(卓密) 등 단응유파의 조각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이다. 비록 조성 발원문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불상의 양식에서 조각승 단응유파의 개성 있는 특징들이 잘 담겨있을 뿐만 아니라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 조각 양식으로 이행되어 가는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불교 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