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심곡사 칠층석탑 출토 금동 불감 및 금동 아미타여래칠존 좌상 ( )

목차
관련 정보
조각
작품
문화재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심곡사에 있는 칠층석탑에서 출토된 고려 말, 조선 초기의 금동불감과 금동불보살상.
작품/불상
창작 연도
고려 말~조선 초
소장처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심곡사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보물(2016년 02월 22일 지정)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장암길 113 (낭산면, 심곡사)
내용 요약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 출토 금동불감 및 금동아미타여래칠존좌상(益山 深谷寺 七層石塔 出土 金銅佛龕 및 金銅阿彌陀如來七尊坐像)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심곡사에 있는 칠층석탑에서 출토된 고려 말, 조선 초기의 금동불감과 금동불보살상이다. 모두 도굴이나 훼손된 적 없이 원형 그대로의 형태로 발견되었다. 금동아미타삼존불은 고려 말, 조선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고, 불감 뒤편 4구의 불보살상은 15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 라마 불교 미술이 우리나라에 수용되는 과정을 볼 수 있어 미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유물이다.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심곡사에 있는 칠층석탑에서 출토된 고려 말, 조선 초기의 금동불감과 금동불보살상.
내용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심곡사 칠층석탑의 해체 · 보수 과정(2012년 6월) 중에 주1 방형공(方形孔)에서 주2와 금동불입상(金銅佛立像)이, 주3 방형공에서 금동불감(金銅佛龕) 1점과 그 주4 내부에 모셔진 7구의 불보살상(佛菩薩像)이 발견되었다.

지대석 방형공은 사각형 형태의 홈으로 가로 25㎝, 세로 24㎝, 깊이 18㎝의 크기이고, 지대석 윗면 중앙에 마련되어 있었다.

형태 및 특징

금동불감은 밑판, 좌우 측면판, 뒤판, 위판이 각각 한 판으로 제작되었고, 문비(門扉)[문짝]만 두 판으로 제작되었다. 위판은 지붕이 형식화된 형태로, 네 면의 모를 죽인 단순화된 녹정형(盝頂形)으로 되어 있고, 정상에는 2개의 고리가 달려 있다.

위판과 밑판은 끝부분을 꺾어 측면판과 뒤판을 안쪽으로 끼우도록 하였으며, 양 측면판과 뒤판은 넝쿨무늬가 새겨진 장식판을 덧대 못으로 고정하였다. 위판의 앞쪽 윗부분에는 안쪽으로 별도의 장식판을 덧대었다.

문비 전면은 원문(圓文)을 중첩시켜 생긴 주5연화문(蓮花紋)이 선각되어 있으며, 문비 안쪽에는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이 배치되어 있다.

감실(龕室) 내부 정면 중앙에는 여래설법도(如來說法圖)를 주6 양각기법으로 나타내고 있다. 중앙에 불좌상(佛坐像)을 중심으로 좌우에 합장한 보살좌상(普薩坐像) 2구가 있고, 불보살상 사이에 상단에 4구, 하단에 2구의 승려상이 묘사되었다.

하단의 좌우 가장자리에는 신장상(神將像)이 각 1구씩 위치한다. 우리나라에 전하는 금동불감과 비교해 보면, 이 불감은 15세기 전반 혹은 중반 무렵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일곱 구의 불상은 불감의 안쪽에서 발견되었다. 금동불감 바닥에는 불상과 보살상의 대좌(臺座)와 연결할 수 있는 일곱 무리의 구멍이 발견되어 불감 주7 당시에 일곱 구의 불보살상이 정연하게 봉안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불감의 앞쪽에서 중앙의 아미타여래좌상(阿彌陀如來坐像)과 좌우에 관음보살좌상(觀音菩薩坐像) · 대세지보살좌상(大勢至菩薩坐像)이, 그리고 불감의 뒤쪽에서는 중앙에 금동불좌상(金銅佛坐像) 두 구, 그리고 그 좌우에 금동관음보살좌상(金銅觀音普薩坐像), 금동지장보살좌상(金銅地藏菩薩坐像)이 배치되었다.

불감 앞쪽에 모셔진 아미타삼존불좌상(阿彌陀三尊佛坐像)의 주8인 아미타여래는 높은 주9에 큼직한 연봉(蓮峯) 모양의 주10를 지니고 갸름한 얼굴에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다.

가사(袈裟)주11주12으로 걸치고, 허리가 약간 길어진 신체를 보인다. 양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아래로 내린 수인(手印)을 결하였다.

좌협시(左脇侍) 보살좌상은 연꽃 가지를 들고 있으며, 우협시(右脇侍) 보살상의 보관(寶冠)에 주13이 새겨져 있다. 주14주15이 맞닿은 연화대좌(蓮花臺座), 보살상들의 커다란 꽃 형태의 원반 모양의 귀고리, 가슴에 U자형으로 늘어진 목걸이 등 14세기 후기 고려 말, 조선 초기에 원대 라마 주16 불상의 영향을 받은 불보살상의 양식적 요소가 강하게 보인다.

아미타불좌상(阿彌陀佛坐像) 내부에서는 사리(舍利)를 담은 수정병과 함께 주17, 곡물과 직물 등의 복장물(腹藏物)이 발견되었고, 협시보살상(夾侍普薩像)에서도 청동후령통과 구슬, 직물 등의 복장물이 확인되었다. 본존과 협시 모두에서 조성시기, 발원자 및 발원 목적 등을 기록한 주18은 나오지 않았다.

불감의 뒤편에는 중앙에 불좌상 두 구와 양측에 보살상 한 구씩 총 4점의 불보살상이 배치되어 있었다. 두 구의 불좌상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결한 양손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 거의 동일한 형식 및 양식을 보인다.

불좌상 향우(向右) 측에는 두 손을 앞에 모아 정병(淨甁)을 받친 관음보살좌상이 있고, 향좌(向左) 측에는 두건을 쓰고 두 손을 앞에 모아 보주를 받쳐 든 지장보살좌상(地藏菩薩坐像)이 있다.

불감 내 금동아미타삼존불(金尊阿彌陀三尊佛)과 이 네 구의 금동불보살상(金銅佛菩薩像)은 다소 다른 조각 양식을 보이고 있으므로, 각 조성 시기에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불감 뒤편 네 구의 불보살상들 중 불좌상 두 구에는 14세기 불상의 특징 중 하나인 내의를 고정하는 금속제 장식 표현이 없고, 상체가 다소 짧아 둔중한 비례를 보이는 등 15세기에 조성된 불상 양식의 특징이 보인다.

향우 측의 관음보살은 높고 화려한 보관과 가슴 앞의 영락(瓔珞) 장식에서 명대 라마 양식 보살상의 영향이 엿보인다. 따라서 15세기 전반 혹은 중반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았던 금동불감과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금동불감 내부 전면에 있었던 금동아미타삼존불은 14세기에 조성되어 심곡사에 주19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심곡사 칠층석탑 자체의 건립 시기도 15세기 전반 혹은 중반 무렵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 바로 이 시기에 금동불감과 불감 뒤편에 배치한 4구의 불보살상을 함께 새로 제작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심곡사에 전세되던 금동아미타삼존불을 함께 같은 불감에 넣어 매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 및 평가

금동불감 및 금동아미타여래칠존좌상은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에서 출토된 것이 분명하며, 모두 도굴이나 훼손된 적 없이 한 불감 내에서 원형 그대로의 형태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 문화적 가치가 매우 높다.

또한,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 티베트 주20 미술의 영향을 받은 원대 및 명대의 라마불교 미술이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수용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유물이다. 2016년 2월 22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금산사 · 심곡사 · 전북사학회 · 국립전주박물관, 『심곡사 칠층석탑과 사리장엄』(국립전주박물관, 2014)
정은우, 『고려후기 불교조각 연구』(문예, 2007)

논문

엄기표,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의 건립 시기와 마술사적 의의」(『전북사학』 45, 전북사학회, 2014)
진정환,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 출토품의 특징과 성격」(『전북사학』 45, 전북사학회, 2014)

인터넷 자료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www.heritage.go.kr)
주석
주1

상대석과 하대석 사이에 있다는 뜻으로, ‘간석’을 달리 이르는 말. 석등(石燈)의 화사석에 받치는 대석이다.    우리말샘

주2

순백색의 바탕흙 위에 투명한 유약을 발라 구워 만든, 둥근 달 모양의 항아리.    우리말샘

주3

건축물을 세우기 위하여 잡은 터에 쌓은 돌.    우리말샘

주4

불상을 모시기 위해 나무나 돌, 쇠 등을 깎아 일반적인 건축물보다 작은 규모로 만든 것을 불감(佛龕)이라 한다. 불감은 그 안에 모신 불상의 양식뿐만 아니라, 당시의 건축 양식을 함께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주5

마름모가 이어져 있는 무늬. 고구려 때의 와당(瓦當)에 많이 나타난다.    우리말샘

주6

금속판을 문양이 조각된 틀에 대고 안팎에서 두들기는 기법으로, 양각법(陽刻法)의 일종.

주7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유물을 의도적으로 묻는 것

주8

법당에 모신 부처 가운데 가장 으뜸인 부처.    우리말샘

주9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 인간이나 천상에서 볼 수 없는 일이므로 이렇게 이른다. 부처의 팔십수형호(八十隨形好)의 하나이다.    우리말샘

주10

조선시대에는 머리 위, 육계(肉髻)에도 구슬이 장식되는데 이를 정상계주라고 한다.

주11

상대편에게 공경의 뜻을 나타내는 예법의 하나. 왼쪽 어깨에 옷을 걸치고 오른쪽 어깨는 드러낸다.    우리말샘

주12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의상에 나타내는, 파도 모양의 늘어진 형상이나 주름.    우리말샘

주13

부처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여러 모습으로 변화하는 일. 또는 그 불신(佛身). 좁은 의미에서는 부처의 상호(相好)를 갖추지 않고 범부, 범천, 제석, 마왕 따위의 모습을 취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말샘

주14

꽃부리가 위로 향한 연꽃

주15

꽃부리가 아래로 향한 연꽃

주16

티베트 계통 불상 양식

주17

복장(服藏)을 넣는 통을 가리켜 후령통(候鈴筒)이라 한다.

주18

신이나 부처에게 소원을 비는 내용을 적은 글.    우리말샘

주19

대대로 전함.    우리말샘

주20

인도에서 티베트로 전하여진 대승 불교가 티베트의 고유 신앙과 동화하여 발달한 종교. 만주, 몽골, 네팔 등지에 전파되었는데, 15세기 초에 총카파(Tsongkhapa)가 개혁하여 세운 신파(新派)를 황모파(黃帽派)라 하고 종래의 종파를 홍교(紅敎)라 하였다. 승려들은 불법승(佛法僧)의 화신으로서 존경받는데 종교적 특권뿐 아니라 세속적 권력을 갖는다. 교주는 달라이 라마(Dalai Lama)이다.    우리말샘

집필자
하정민(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