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 )

조선시대사
문헌
1819년, 신정왕후 조씨를 효명세자의 빈으로 책봉할 때 제작한 죽책.
문헌/문서
용도
책봉
발급자
순조
수급자
효명세자빈
소장처
국립고궁박물관
관련 인물
신정왕후
내용 요약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은 1819년, 신정왕후 조씨를 효명세자의 빈으로 책봉할 때 제작한 죽책이다. 조만영의 딸을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의 빈으로 책봉할 때 제작하였다. 조선 왕실의 의례와 우수한 공예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며, 국외 소재 문화재에 대한 다자간 민관협력의 우수한 사례로 평가된다.

정의
1819년, 신정왕후 조씨를 효명세자의 빈으로 책봉할 때 제작한 죽책.
제작 및 발급 경위

1819년(순조 19)에 조만영(趙萬永, 1776∼1846)의 딸인 신정왕후 조씨(神貞王后 趙氏, 1808~1890)를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의 빈으로 책봉할 때 제작한 주1이다.

형태와 내용

6첩의 죽책으로 각 쪽의 크기는 가로 17.5㎝, 세로 25㎝이다. 문장은 우의정 남공철(南公轍, 1760~1840)이 지었고, 글씨는 서사관 이만수(李晩秀, 1752~1820)가 썼다. 『효명세자가례도감의궤』에 따르면, 원래는 죽책에 글자를 새긴 후 글씨 하나하나마다 정성스레 주2를 입혔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금니가 대부분 벗겨진 상태이다.

전형적인 조선 왕실의 죽책 형식을 엿볼 수 있는 공예품으로 뛰어난 예술성을 지닌 왕실 의례의 상징물이다. 조선 왕실의 어보와 어책 일괄은 조선 왕실의 의례와 예술이 드러나는 중요한 유물로,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은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하던 중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하여 불타 없어진 것으로 추정되어 왔다. 2017년 6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국외 문화재 유통시장 모니터링 중에 프랑스의 한 경매에 죽책이 출품된 것을 확인하고 프랑스 경매사에 경매 중지를 요청하였다. 그 후 당시 소장자와 협의를 진행하여 라이엇 게임즈의 기부금으로 매입한 뒤 국립고궁박물관에 무상 기증하였다.

의의 및 평가

조선 왕실의 의례와 우수한 공예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며, 국외 소재 문화재에 대한 다자간 민관협력의 우수한 사례로 평가된다. 2021년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신문 · 잡지

김동현, 「150여년 만에 프랑스서 경매물로 등장한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세계일보』, 2018. 9. 18.)

인터넷 자료

문화재청(http://www.cha.go.kr/main.html)
주석
주1

조선시대에 왕세자와 왕세자빈을 책봉하고 존호(尊號)를 올릴 때에 그에 관한 글을 대쪽에 새겨 엮은 문서.

주2

아교에 개어 만든 금박 가루.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쓸 때 사용하며, 특히 어두운 바탕의 종이에서 독특한 효과를 낸다.    우리말샘

집필자
성인근(경기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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