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운산(雲山)이다. 1922년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면 운산리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보천교(普天敎)를 신봉하던 아버지 안병욱(安柄彧)의 영향을 받았다.
1945년 9월 이상호와 이정립 등이 서울에서 대법사를 창립할 때, 충청도 지방의 포교를 맡아 교화하였다. 그러나 이들과 뜻이 맞지 않아, 1951년 대법사를 떠났다. 그 후 공주와 대전 등지에서 생업에 종사하다가, 1974년부터 종교운동을 다시 시작하였다.
옛 연원지인 아산 · 예산 · 서산 등지에서 신도들을 모아 1978년에 대전시 대사동 자택에서 ‘대법사증산교’라는 이름으로 창교하였다. 그는 종도사(宗道師: 교주, 뒤에 太上宗道師)가 되고, 아들 중건(重建: 호 耕田)을 교화원장으로 삼아 교리강좌와 강연회 등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1980년에는 대전시 중구 괴정동에 교당을 신축하여 ‘증산도장(甑山道場: 뒤에 증산도)’으로 교명을 바꾸었고, 활동지역을 서울로 옮겨 젊은 청년과 대학생을 중심으로 포교활동을 전개하였다.
『이것이 개벽이다』(1983년)와 『증산도의 진리』(1984년)를 간행하여 증산도를 크게 알렸고, 이후에는 『증산도도전(甑山道道典)』 발행, 증산대학 설립, TV방송국(STB) 설립 등 비약적인 발전을 도모하였다. 2000년 이후에는 아들 중건에게 실권을 맡겼다가 2012년 대전 본부에서 사망하였다.
증산-고부인[고판례(高判禮)]-안운산[안세찬(安世燦)]-안경전[안중건(安重建)]으로 이어지는 종통을 세웠다. 그가 만든 신당에는 중앙에 증산, 왼편에 단군왕검, 오른편에 고부인의 삼위(三位)를 각각 영정으로 모시고 그 외 여러 신들을 봉안하고 있다.
그가 정립한 교리의 핵심은 인존정립(人尊正立) · 상생조화(相生造化) · 해원보은(解寃報恩)의 법리를 심령법도(心靈法度)로 광제창생(廣濟蒼生)하는 목적과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며, 이 세상은 머지않아 가을철의 대개벽운동이 일어나 병겁(病劫) 등 많은 어려움을 겪고 새로운 세상이 되는데, 이런 어려운 세상을 바로잡고 인류를 구원할 사명이 증산도에 주어졌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