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은 1909년(선통 1)에 설치되었는데, 청은 백두산 일대의 관할 지역이 넓어 조정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거나 무단 월경 등의 국경문제가 자주 발생하자 백두산 동쪽을 관할하는 행정력을 세웠다. 이때 “변경(邊境)을 안정시키고, 두만강 강계(疆界)를 보호한다.”라는 의미에서 ‘안도(安圖)’라고 이름을 지었다. 1952년 9월 3일에 연변조선족자치구가 성립되었고, 1955년에 자치구가 자치주로 바뀌며 이 지역을 관할하였다.
안도현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직할현이며, 자치주의 서남쪽에 위치한다. 1963년 명월진 동쪽 동굴에서 연변지역 최초의 인류인 ‘안도인’을 발굴하면서 안도현은 상고시대부터 인류 삶의 터전이었던 곳으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또 석문진(石門鎭) 중평촌(仲坪村)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널무덤군인 안도숭실돌널무덤군과 용흥촌(龍興村)에 있는 안도용흥돌널무덤군이 옥저(沃沮) 선조의 문화 유형으로 분류되고 있다.
북간도에 속하는 안도현에는 일제강점기인 1923년에 대한민국임시정부 직할의 독립군단체인 대한민국임시정부육군주만참의부(大韓民國臨時政府陸軍駐滿參議府)가 이곳에 거주하는 동포 사회를 관할하며 항일전을 전개하였다.
1929년대 발간된 『요령안도현지(遼寧安圖縣誌)』에는 “전 현에 한족이 제일 많고, 만족(만주족)이 버금가며, 한인 교민이 또 버금가고, 회민(회족)이 가장 적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도 안도현의 인구와 민족 구성에서 한족, 만족, 조선족의 순으로 차이가 나는데, 열에 한둘이 조선족인 셈이다.
그러나 안도현의 조선족 집거지도 공동화현상이 심각하다. 안도의 주요 향진 중 하나인 석문진은 과거 16개 촌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1992년 한중수교 이후 경제적, 사회적 변화로 인해 2004년 9개 촌으로 합병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인구 급감과 더불어 학교의 학생 수 감소를 가져왔고, 이는 곧 소학교와 중학교의 감소 또는 폐교의 수순으로 이어졌다. 인구는 2014년 기준으로 20만 9천여 명이며, 그중에서 조선족은 전체 인구의 21%를 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