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월진 ()

인문지리
지명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에 위치한 조선족 집거지역.
이칭
이칭
옹성라자(甕聲啦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에 위치한 조선족 집거지역.
내용

일제강점기에 이주한 조선족의 대표적인 집거지역으로, 만주 일대에서 활약하던 조선인 무장독립운동단체 및 중국인과 합작한 동북항일연군의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 일제와 만주국이 만든 특수부대인 간도특설대(間島特設隊)가 설치 · 운영되었던 곳이다. 만주국의 간도특설대는 기존의 국경감시대가 모태였으며, 1932년에 창설되었다. 부대의 초창기에는 부대장과 간부 일부가 일본군이었으나, 후에 조선인 군관으로 구성되었다.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한 군관들 중에는 해방 후 한국군 창설에 참여하였거나 한국군의 지휘관으로 복무한 이들도 많았는데, 박정희와 백선엽 등이 대표적이다.

명월진(明月鎭)의 여러 마을 이름에는 모두 이주한 조선민족의 애환과 염원이 담겨있는 지명이 많다. 스스로 개척해서 일군 마을이다 보니 그 자손들이 자자손손 뿌리내리는 마을로 발전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태양촌, 홍광촌, 금풍촌, 민락촌, 발재촌 등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경상도에서 이주한 조선인들이 정착한 발재촌은 초기 이주민들이 “재물이 피어나라.”라는 의미에서 ‘발재’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발재마을 주민들은 독립운동, 항일운동, 중국 공산화 등을 거치면서도 주변의 농경지를 개간하고 경작했고, 1970년대까지 조선족의 이주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70호 이상으로 호구 수가 늘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발재마을 역시 젊은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한국과 중국 연안도시로 빠져나가면서 조선족 마을은 공동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자리를 한족들이 채우고 있다.

명칭 유래

안도현의 북부에 위치한 명월진은 명월구(明月溝)에 진(鎭) 정부사무소가 있으며, 현의 정치 · 경제 · 문화의 중심지이다. 명월구는 ‘밝은 달의 골짜기’라는 의미였다. 명월진에는 바위산이 많은데, 시내 중심에 돌산이 웅크리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옹성라자(甕聲啦子)’라고 불렸다. ‘라자(啦子)’는 만주어로 ‘바위벼랑’이라는 의미이다.

발해국 노주(蘆洲)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오래전부터 사람의 삶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대에는 봉금령으로 사람이 살지 않다가 차츰 인가가 늘어나면서 남강(南岡, 연길을 말함) 개간국 숭례사에 속했다. 1912년 연길현 제3구 옹성라자촌이 되었다가 1933년 돈화-도문철도가 개통하면서 명월구가 되었다. 명월촌, 명월시, 명월구로 개명이 거듭되었다가 1949년 안도현의 정부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명월진으로 되었다. 그러므로 안도는 명월구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일설에 의하면, ‘못을 이용한 바위벼랑에 물 흐르는 소리가 부딪혀 메아리를 만들었기에 나는 소리’라고 하거나 “바위벼랑 위에 무리를 지어 놀던 꿩들의 우짖는 소리가 골짜기에 메아리로 울렸는데, 마치 그 소리가 항아리에서 나오는 소리 같았다.”, “누군가 바위에 올라 소리를 지르니 마치 항아리에서 나오는 소리 같았다.”라고 하는 등 설이 분분하다.

현황

명월진은 화동(華東), 성동(城東), 명동(明東), 신안(新安), 흥화(興華), 원예(園藝) 등 53개의 행정촌(村)과 73개의 자연마을[屯]을 관할하고 있다. 주요 거주 민족은 한족, 만족, 조선족이다. 부르하통하[布尔哈通河]와 장흥하(長興河)가 관내를 흐르며, 장도철로(長圖鐵路) · 장혼공로(長琿公路) 등 철로와 도로가 발달하였다.

명월진은 만족생태풍경구, 명월호풍경구 등 수려한 자연환경과 천연자원이 풍부한 곳으로, ‘장백산 아래 수려한 변경도시’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연길에서 백두산을 가기 위해서는 안도현의 명월진과 이도백하를 경유해야 한다. 명월진 영승촌은 검은귀버섯 양식으로 명성이 높다. 주민들은 ‘영승촌식용균전문합작사’를 설립하고 검은귀버섯, 표고버섯을 체계적으로 재배 · 생산 · 판매하고 있다.

참고문헌

『연변 100년 역사의 비밀이 풀린다: 지명으로 읽는 이민사』(김호림, 글누림, 2013)
『그 많던 조선족은 어디로 갔을까?』(정근재, 북인, 2005)
『환경매일신문』(2015.2.15.)
吉林·安圖(www.antu.gov.cn)
行政区划网(区划地名网)(www.xzqh.org)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