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인왕동 사지 ( )

건축
유적
문화재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
유적/터
원건물 건립 시기
통일신라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2016년 01월 28일 지정)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342
내용 요약

경주 인왕동 사지는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이다. 이 절터는 옛부터 김인문의 원찰인 인용사로 알려져 있었으나, 총 4차례의 발굴조사에서 이를 입증할 만한 뚜렷한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신라의 전형적 쌍탑가람을 보이면서 동시에 '아(亞)'자 형 건물지 등 독특한 유구가 확인되고 있으며, 통일신라시대 미술의 특징이 뚜렷한 석탑, 자기, 토기, 목간 등이 출토되었다.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
발굴 경위 및 결과

신라 궁성 월성 남쪽으로 70~80m 떨어진 곳에 있는 절이다. 이 절터는 김인문(金仁問)원찰(願刹)인용사(仁容寺)로 전해졌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총 4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실시하였으나, 인용사로 확정할 만한 것은 확인되지 않았다.

발굴조사에서는 조사 전부터 지표 위에 노출되어 있던 석탑지를 중심으로 하는 가람과 이것보다 이른 시기의 사찰과 관련이 없는 유구가 중첩되어 확인되었다.

형태와 특징

사찰의 구조는 석탑지를 중심으로 남쪽에 중문지, 북편에 금당지가 일직선상에 배치된 형식이다.

금당지는 석탑지에서 북쪽으로 8.2m 떨어져 있는데, 이중기단에 정면 5칸, 측면 5칸의 규모로 확인되었다. 금당지 남쪽 동서 2곳에 발굴조사 전부터 무너진 탑 부재가 노출되어 있었는데, 양 탑 사이는 7.7m가 떨어져 있다.

두 탑은 이중기단에 삼층의 탑신인데, 상층기단 면석에는 팔부중상을 조각하였다. 1층 탑신에는 주1를 조각하였다. 석탑 축기부 조사 시 그 주변에서 주2인 항아리 4점이 출토되었다. 탑 상륜부는 발굴조사에도 확인되지 않았다.

중문지는 탑지에서 남쪽으로 8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이 중문지는 '아(亞)'자 형의 특이한 평면 형태를 보인다. 여기에서는 1m 정도 되는 치미(鴟尾) 편과 지진구 5점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중문지 좌우에는 동 · 서 회랑지와 연결하는 주3이 확인되었다.

사지의 중심축에 배치된 중문지-탑지-금당지 좌우 양쪽에 남북 방향으로 길쭉한 동 · 서 회랑지가 확인되었다.

사찰은 가람의 구조, 석탑의 양식 특징을 고려할 때 8세기 중후반에서야 사찰이 조영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발굴조사에서는 8세기 후반 가람이 들어서기 전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6세기 말~7세기 중엽의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지는 백제 지역에서 성행하던 기와로 기단을 만드는 소위 와축기단 건물지인데, 사찰의 부속건물로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

7세기 말~8세기 전반까지로 추정되는 유구 가운데 이중기단의 목탑지가 확인되었다. 가장 마지막 단계의 가람은 금당과 2기의 석탑, ‘아(亞)’자 형 중문을 갖춘 가람인데, 8세기 후반~10세기 전반에 운영되었다.

의의 및 평가

경주 인왕동 사지는 신라의 전형적 쌍탑가람을 보이면서도 동시에 ‘아(亞)’자 형 건물지 등 독특한 유구가 확인되고 있으며, 통일신라시대 미술의 특징이 뚜렷한 석탑, 자기, 토기, 주4 등이 출토되었다.

신라 사찰 구조 및 건축 연구자료로서 역사적 · 학술적 가치가 크다. 1991년 3월 25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가, 2016년 1월 28일 사적으로 승격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전(傳)인용사지 발굴조사보고서 Ⅰ』(국립경주박물관 · 경주시, 2013)
주석
주1

석탑 초층 탑신부에 조각된 문짝을 말하며, 내부 공간이 있음을 상징한다.

주2

우리나라에서는 토착신앙과 도교의 지신(地神)이라는 개념 위에 불교적인 의례가 수용되기 시작하면서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나 탑, 무덤 등의 건축물을 세울 때 건물의 안전을 위해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건물의 주변이나 내부에 공양품으로써 다양한 종류의 물건을 용기에 담아 땅에 묻기도 하였다. 이러한 물품들은 진단구(鎭壇具) 또는 지진구(地鎭具)라고 하는데, 건물을 새로 짓거나 수리할 때 불이나 큰 재앙을 막고자 하는 벽사(辟邪)와 기원(祈願)의 뜻을 담아 땅 속에 묻는 물건을 말한다.

주3

대문의 좌우 양편에 이어서 지은 행랑.    우리말샘

주4

글을 적은 나뭇조각. 종이가 없던 시대에 문서나 편지로 쓰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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