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신길동 유적 ( )

선사문화
유적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와 널무덤 · 우물지 · 건물터 관련 생활유적.
정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와 널무덤 · 우물지 · 건물터 관련 생활유적.
개설

경기도 남서부해안지역에 위치하는 복합유적군이며, 발굴조사 지역에 따라 Ⅰ~ Ⅴ지점으로 나누어진다. 각 지점의 유적에서는 구석기시대 문화층을 비롯하여 신석기시대 취락, 원삼국시대 주거지 및 분묘, 백제시대 주거지, 고려·조선시대 주거 및 분묘 등 다량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주거지와 분묘 등에서는 신석기시대 즐문토기와 석기, 원삼국 및 백제시대 토기, 고려·조선시대 기와와 자기, 청동기, 철기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내용

경기도 안산시 신길택지개발사업에 따라 고려문화재연구원에서 2005~2007년에 걸쳐 발굴 조사하였으며,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장기간에 형성된 복합유적군이다. 유적은 발굴조사 지점에 따라 Ⅰ~ Ⅴ지점으로 구분되며, 시흥시와 접하는 안산시 서북부 해안지대의 비교적 평탄한 낮은 구릉상에 분포한다. 각 지점에서는 구석기 문화층을 포함하여 신석기시대 취락, 원삼국 및 백제시대 주거와 분묘, 고려·조선시대 주거와 분묘군 등의 다양한 유구와 유물이 출토되었다.

Ⅰ지점에서는 온돌시설로 추정되는 유구와 조선시대 주거지·분묘·우물 등이 조사되었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온돌 유구에서는 기와와 청자, 자기편이 출토되었다. 주거지 구조는 방형의 수혈주거이며, 분묘는 토광묘이다, 토광묘의 크기는 275~150㎝ 정도이며 부장품으로는 청동제 숟가락, 철제 가위가 출토되었다.

Ⅱ지점에서는 상당부분이 훼손된 근대 건축물의 흔적 이외에 다른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유구 주변에서는 기와 자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Ⅲ지점에서는 신석기시대 주거지 1기와 조선시대 대규모 분묘군이 발굴되었는데, 주거지의 구조는 절반 가량이 결실된 수혈 주거지로 형태는 방형으로 추정된다. 내부 시설로는 노지와 벽구시설이 있으며, 주변에서 즐문토기와 마제석부 등이 출토되었다. 즐문토기는 단사선문과 횡주어골문이 시문된 첨저 심발형이다. 분묘는 단장묘 84기, 합장묘 12기 등 96기가 검출되었으며, 형식은 토광묘이다. 크기는 장축 200~240㎝, 단축 71~80㎝ 정도이다. 토광 단벽에는 감실을 설치하고, 바닥에는 수혈을 마련하여 부장품을 안치하였다. 부장품으로는 청동제 합·발·수저·무구·거울과 철제 가위·관정·철편,도제 장군· 대접·발·접시, 유리구슬 등이 출토되었다. 분묘의 축조시기는 도자기의 형식적인 특징으로 보아 14~16세기로 추정된다.

Ⅳ지점 유적은 Ⅲ지점과 연접한 평탄한 저구릉상에 위치하며, 여기서 신석기시대 수혈주거기 23기가 군집을 이루는 대규모 취락과 원삼국시대 토광묘가 검출되었다. 주거지는 남쪽 구릉에 집중 분포하며 동서 2개 군으로 배치되어 있다. 주거지의 구조는 말각 방형의 평면에 4주식 기둥배치와 중앙에 원형의 수혈식 노지를 갖는 형식이다. 내부 면적은 9~11㎡가 일반적이며, 노지의 크기는 45~80㎝ 정도이다. 취락의 폐기 원인은 5기의 주거지를 제외하고 내부에서 다량의 목탄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화재로 추정된다.

주거지 내부와 퇴적층에서는 즐문토기와 마제석부·타제석부(굴지구)·갈돌·갈판·석도·숫돌 등이 출토되었다. 즐문토기 형식은 압인·압날·침선기법으로 단사선·점열문·횡주어골문·종주어골문·격자문·사선문 등을 시문한 중서부지역의 특징적인 첨저 심발형토기 이다. 이밖에 저부가 납작한 평저 심발형와 호형, 원통형토기도 출토되었다. 주거지의 축조 연대는 즐문토기의 형식적인 특징과 방사성탄소연대측정치로 보아 신석기시대 중기인 서기전 3,500년 전후한 시기로 추정된다.

토광묘는 2기가 조사되었는데, 구조는 주구가 설치된 토광목관묘 형태이며, 주구와 토광 내부에서는 회백색 연질토기와 회청색 타날문토기, 철제 도자가 출토되었다. 토광묘의 성격은 유구 훼손이 심해 불투명한 점이 있으나 원삼국시대의 늦은 단계인 3~4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Ⅴ지점의 저지대 평탄면에서는 구석기시대 문화층과 백제시대 주거지, 구상유구, 근대 분묘 등이 확인되었다. 구석기문화층에서는 석영제 다면석기 1 점이 출토되었고 백제 주거지는 평면이 呂자형이루며 내부에 부뚜막과 벽구, 출입시설 등이 설치된 구조이다. 주거 면적은 16㎡ 정도이며, 1호 주거지의 경우 규모는 장축 690㎝, 단축 490㎝, 깊이 8㎝ 이다. 출토유물로는 회청색 경질토기·적갈색 연질토기·파수부토기·대옹·방추차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다양한 유적이 혼재하는 복합 유적군으로 각 지점 유적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구와 유물은 중서부지역 선사·고대뿐만 아니라 근세의 생활문화를 이해하는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Ⅳ지구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 중기의 대규모 취락은 인천 운서동, 기흥 농서리, 시흥 능곡동유적과 더불어 중서부지역 신석기시대 주거문화와 생계 체계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Ⅲ지점에서 발굴된 분묘의 묘제 양식과 부장 방식, 다양한 출토유물은 조선시대 중서부지역의 매장문화를 연구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문헌

『안산 신길동유적』(고려문화재연구원, 2009)
집필자
하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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