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칠금동야철유적은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탄금대 남동사면 구릉 말단부에 자리한다. 일찍이 충주는 『 고려사』에 ‘철산지(鐵産地)’ 중 한 곳으로, 『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다인철소(多仁鐵所)’가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근대 이후 철광석 매장량 조사 결과, 남한 지역 매장량의 약 25%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철광맥이 확인되었다.
충주칠금동야철유적은 충주에서 확인된 가장 이른 시기의 제철 공장에 해당된다. 이 유적은 2006년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400-1번지에서 철광석을 녹여 철을 분리해 내는 제련로(製鍊爐) 1기가 처음 확인된 이후 2016년도부터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현,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에 의해 400-1번지의 서편 인근, 약 1,000㎡에 대한 발굴 조사가 진행되어 30여 기에 달하는 제련로가 확인되었다.
이 유적에서 확인된 제련로의 형태는 원형으로 반지하식 구조이다. 내경은 약 110150㎝이고, 노벽(爐壁) 두께는 약 2530㎝로 조업 당시 폭 약 1.62.1m, 높이 약 23m에 달하는 구조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형로와 연결되어 철광석에서 철과 분리되어 빠져나온 각종 불순물을 받는 구덩이가 타원형으로 확인된다. 출토 유물은 송풍관과 항아리류, 바리류, 긴계란모양토기 등의 백제 토기와 노벽 조각, 철재 조각, 철광석 등이 다량 확인되었다.
충주칠금동야철유적은 다른 제철유적과 비교하여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진다.
첫째, 철광석을 녹여 철을 만드는 공정만 확인되는 전문 제련공장으로, 현재까지 조사된 국내 제련유적 중 최대 규모이다.
둘째, 가마가 중층적으로 조성되었다는 점이다. 사용 기한이 끝난 노(爐)는 폐기 후 그 옆이나, 폐기층을 쌓아 그 위로 다시 노를 조성해 작업장을 옮기지 않고 약 100여 년간의 장기 조업이 이루어졌다. 이는 한강을 통한 연료 및 원료의 수급과 생산품 유통의 이점 때문으로 추정된다.
셋째, 용광로를 만들 때 습기를 제거하기 위하여 땅을 깊게 파고 바닥과 측면에 목재를 빽빽하게 채운 후 그 위로 노를 조성한 점이다. 이러한 조성 방식은 국내에서 처음 확인된 것으로 칠금동식 제련로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