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군 마령면 출신의 오기열(吳基烈) · 전영상(全永祥)이 1919년 3월 6일 이성녀(李姓女)의 집에서 3·1운동 관련 문서 3매를 작성하여 진안면 · 마령면 평지리 등에 부착하는 등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진안의 3·1운동은 3월 25일 진안읍 장날에 시작되었다. 수백 명이 참가한 만세 시위는 왜경과 헌병대의 출동으로 해산되었다. 4월 3일 주천면(朱川面) 주양리(朱陽里)에서 김주한(金周漢) 등이 사립화동(華東)학교의 학생 양해관(梁海寬) 등을 권유하여 화동학교 교정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불렀고, 그 날 밤에는 주민 · 학생 약 60명이 동리 앞 논에서 횃불을 들고 만세를 불렀다. 4월 6일에는 마령면(馬靈面) 평지리 뒷산에서 김구영(金龜泳) · 오기열(吳基烈) · 전영상(全永祥) · 황해수(黃海水) 등의 주동으로 인근 주민 수백 명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4월 12일에는 성수면(聖壽面) 도통리(道通里)에서 전경원언의 주동으로 수십 명이 만세 시위를 하였다. 4월 13일 마령 장날에는, 오기열 · 전보익(全補益) 등의 주도로 마령 시장(마령면 평지리)[현 마령면 평지리 1264 일대]에서 만세를 불렀다.
주천면 주양리 만세 운동을 주도한 김주한은 징역 1년, 마령면 평지리의 만세 운동을 주도한 오기열과 전영상은 각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아 수형 생활을 하였다.
진안의 3·1운동은 3월 25일부터 4월 13일까지 근 20일에 걸쳐 일어났으며, 학생과 시민이 주도한 운동이었다. 특히 마령면의 시위는 진안군 최대의 3·1운동으로 기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