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인비행가양성소는 한인 비행가 양성을 목적으로 1920년 2월 20일 미국 캘리포니아 윌로우스에 설립되어 1921년 4월 폐소한 학교이다. 1920년 군무총장 노백린이 김종림의 후원을 받아 미국 캘리포니아 윌로우스(Willows)에 설립하였다. 운영비는 김종림이 매월 기부한 3,000불로 충당하였다. 학생들은 캘리포니아 교육국에서 임대한 퀸스 디스트릭트 학교 건물에서 교련, 전술, 비행술, 비행기 수리와 관리, 무선전신학(無線電信學), 영어 등을 배웠다. 77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여 독립운동에 필요한 한인 비행가를 양성하였다.
1920년 2월 20일 미국 캘리포니아 윌로우스(Willows)에 설립된 대한인비행가양성소(大韓人飛行家養成所)는 퀸트(Quint)학교 건물을 빌리고, 김종림이 운동장과 비행기를 구입하였다. 1920년 3월 이 비행기학교의 학생은 김전 · 김태선 · 박대일 · 박유대 · 박희성 · 손리도 · 신영철 · 신형곤 · 이도선 · 이영기 · 임상희 · 정리용 · 정몽룡 · 정흥성 · 조기초 · 조종익 · 조진환 · 최능익 · 최명길 · 홍종만 등 24명이었고, 그 해 6월에는 30명으로 증가하였다. 공식 개교일은 1920년 7월 5일, 교장은 노백린, 총재는 김종림, 교관은 레드우드 비행학교의 교관이었던 브라이언트(Frank K. Bryant), 한국인 교관은 오림하(吳臨夏, 吳臨河) · 우병옥(禹炳玉) · 이용선(李用善) · 이초(李超) 등이었다.
김종림의 2만 불 기부와 40에이커의 운동장으로 시작된 이 학교의 운영비는 김종림이 매월 기부한 3000불로 충당하였다. 학생들은 10불의 월사금을 내고 캘리포니아 교육국에서 임대한 퀸스 디스트릭트 학교 건물에서 교련, 전술, 비행술, 비행기 수리와 관리, 무선전신학(無線電信學), 영어 등을 배웠다. 1920년 6월 22일 김종림이 구입한 첫 번째 비행기가 도착하여 비행술 실습이 시작되었고, 이후 최소 2대의 비행기를 더 구입하였다. 1920년 7월 7일 오림하 · 우병옥 · 이용선 · 이초 등 4명이 제1회로 졸업하여 모두 이 비행기학교의 교관이 되었다. 1920년 말부터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하였고, 1921년 4월 폐소하였다.
1921년 4월 대한인비행가양성소는 폐소하였지만, 비행 학생들의 다른 비행학교로의 유학은 계속되었다. 1922년 학생수 41명을 기록하였고, 1923년 11명의 졸업생을 포함하여 1923년까지 77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대한인비행가양성소는 독립운동에 필요한 한인 비행가 양성을 목표로 하였던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학교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