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돈(劉尙敦)은 1874년 5월 평안북도 철산군(鐵山郡) 여한면(餘閑面)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는 유상돈(劉尙燉) · 유철(劉鐵) · 유철(劉哲) · 유여택(劉徐澤) · 유상돈(劉相敦) 등이 있다.
유상돈은 1900년대 평안북도 철산군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또한, 벽동군(碧潼郡)에서 ‘수주(守主)’를 처단하고 체포되어 의주감옥에 수감되었다가 파옥, 탈출하였다. 이후 유상돈은 러시아로 이주하여 권업회(勸業會) 경찰부원(警察部員)으로 활동하였다.
권업회는 1911년 5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新韓村)에서 조직된 항일 독립운동 단체였다. 창립 발기는 이종호(李鍾浩) · 엄인섭(嚴仁燮) 등에 의해 이루어졌고, 창립총회에서 회장 최재형(崔才亨), 부회장 홍범도(洪範圖) 등이 선임되었다. 조직의 목표는 한인의 실업을 권장하고 직업과 일터를 알선하며, 생활 기반을 다지기 위해 저축을 권장하고 상애(相愛) · 상신(相信)의 친목을 도모함이었다. 그러나 이는 러시아 당국의 공인을 받기 위한 방편이었다. 실질적인 조직의 목표는 시베리아 한인 사회 각계각층의 항일 독립운동가와 민족운동가를 효과적으로 조직하여 조국 독립의 최고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었다.
유상돈은 1915년경 러시아 이르쿠츠크로 이동하여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결성된 ‘21형제(兄弟)’라는 모임에 참가하였다. 1918년 10월에는 중국 무링현〔穆陵縣〕 팔면둔(八面屯)에서 일본군 출병에 저항하여 약 150~300여 명을 결집하게 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전개하던 중 유상돈은 1919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결성된 노인단(老人團, 노인동맹단) 이사에 홍범도와 함께 선임되었다. 노인단은 원래 1912년 신한촌에서 조직되었다가 3 · 1운동 이후 확대, 개편된 조직이다. 노인동맹단은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독립운동에 종사하는 청년들을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독립운동 단체로, 독립운동 자금 모집,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 제출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의 암살을 기도하였던 강우규(姜宇奎)도 노인동맹단 단원이었다.
노인동맹단에 참여한 뒤 유상돈은 러시아 이만(Iman) 지역에서 민회장(民會長)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조선독립단결사대장(朝鮮獨立團決死隊長)으로, 1922년 러시아인 오르소닌으로부터 ‘조선 내지에서 공산주의 선전’을 의뢰받은 치타(Chita) 공산학교 졸업생 한경서(韓京瑞) 등과 함께 협의한 뒤 국내에 선전원을 파견하였다.
1924년 9월에는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의 후원과 이동휘(李東輝)의 지도 아래 중국 무링현 소수분(小綏芬)에 조직된 동양혁명대의단(東洋革命大義團)의 집행부장으로 활동하였다.
2011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