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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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전 시기에, 책을 팔던 서점.
이칭
이칭
책사(冊肆), 서관(書館), 서포(書鋪), 책포(冊鋪), 서방(書房), 서림(書林), 서고(書賈), 서호(書戶), 서각(書閣), 서옥(書屋), 서루(書樓), 서점(書店)
내용 요약

서사(書肆)는 책을 파는 점포이다. 조선시대에는 책사(冊肆), 대한제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는 서관(書館), 서포(書鋪), 책포(冊鋪), 서점(書店) 등으로 불렸다. 조선에서는 서사 설립 논의가 일찍부터 있었으나 체계를 갖춘 민간 서사의 등장은 더뎠고 운영도 미미했다. 서사의 역할을 세책점 또는 책쾌(서적상) 등이 대신하다가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근대적 성격의 서점이 나타났다.

목차
정의
근대 이전 시기에, 책을 팔던 서점.
내용

문을 숭상하고 독서를 제일로 여긴 조선사회에서는 일찍이 16세기에 서사 설립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건의했으나 그것이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다. 조선시대에 책의 출판과 유통은 기본적으로 나라에서 관리했다. 교서관(校書館)이 활자 주조와 서적 인쇄를 관리하던 상황에서 지식 독점을 추구한 지배층과 조선의 왕들은 민간에서 서사가 생겨나는 것을 부정적으로 여겼다. 위정자들은 국가 기밀 유지와 지식 확산 방지를 위해 민간에서의 책의 유통을 허락하지 않았다.

조선 전기의 서사 설립 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519년(중종 14) 6월에 시강관(侍講官)한충(韓忠)이 향약의 시행과 『소학(小學)』의 우수성 등을 논하던 어전회의에서 서사의 설립을 처음으로 건의하였다. 그후 1522년(중종 17)에 장령 어득강(魚得江) 등이 서사 설립을 재차 주장하였다. 왕도 서사의 설립에 호의적이었으며, 책 구입 시 대금을 보조하는 방안을 의논하라는 전교까지 내렸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1542년(중종 37)에 어득강이 상소를 올려 다시 서사 설치를 주장했다. 유교 지배 이념에 부합한 효 · 충 · 열 인물 관련 책과 역사서를 서사에서 출판할 것을 제안하고, 과장(科場)에 불법으로 소지한 책들을 수거하여 서사에 내다팔도록 하는 구체적인 의견까지 제시하였다. 1551년(명종 6)에는 명종이 대신들에게 서사 설립을 의논하게 하고 사헌부의 청에 따라 설립을 허락하였다는 기록도 보인다. 그러나 그 후 서사가 실제로 설립되었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개항 이전에, 명종이 서사 설립을 허락했다고 한 16세기 중반에 제작된 『고사촬요(攷事撮要)』의 서책시준(書冊市準)에는 서적의 가격 목록이 적혀 있어 이것을 서사에서 거래된 책값 목록으로 보아 서사 설립의 방증 자료로 보기도 한다. 또한 영 · 정조대에는 학문 수준이 이전 시기와 달리 크게 발달하고, 그만큼 서적을 찾는 지식인이 많았기 때문에 민간 서사가 이미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18세기 중후반에 상업과 유통, 경제가 발달하면서 서적중개상과 주1을 통한 서적 유통이 활발해진 것도 서사의 설립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18세기 영조대에 약계책사(藥契冊肆)와 박도량 서사(朴道亮書肆)는 부분적이나마 민간 서사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악계책사는 1752년에 의원(醫員) 박섬과 전직 녹사(綠事) 이인석이 경영했는데, 한 건물에 의원을 설치하여 약을 팔면서 책도 팔았다. 박도량 서사는 1771년(영조 47)에 불온서적으로 낙인찍힌 중국 역사서 『명기집략(明紀輯略)』을 유통시켰다는 죄목으로 타격을 입고 더 이상 운영을 하지 못했다. 이렇듯 중인이 운영한 겸업 형태의 서사가 일부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19세기 초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중 「서적방사변증설(書籍坊肆辨證說)」 내용에 근거해 1829년(순조 29)에 민간 서사가 처음 나타났다고 보기도 한다. 조정에서 서울의 보문단동에 서사를 열게 했는데, 무뢰한들이 대낮에 책을 빼앗아 가는 일이 잦아 곧 문을 닫고 말았다. 이렇듯 19세기까지만 해도 책에 대한 상거래 인식과 체계가 불철저했기 때문에 국내 민간 서사가 발달하기 어려웠다.

상업 목적의 근대식 민간 서점이 나타난 것은 19세기 말 이후의 일이다. 고유상이 운영한 회동서관을 비롯해 박문서관, 한남서림 등이 19세기 말~20세기 초에 나타났다. 조선시대에 민간서사 대신 실질적으로 상업적 서적유통을 이끈 것은 주로 책쾌(서적상)와 세책점이었다.

참고문헌

원전

『중종실록』 14년 6월 8일조, 17년 3월 4일조, 37년 7월 27일조.
이규경, ‘서적방사변증설’, 「전적잡설(典籍雜說)」, 『오주연문장전산고』

단행본

제홍규 편저, 『한국서지학사전』(경인문화사, 1974)
정형우, 「서사문제논고」, 『조선조 서적문화 연구』(구미무역, 1995)
김치우, 『고사촬요 책판목록과 그 수록 간본 연구』(아세아문화사, 2007)
이민희, 『16~19세기 서적 중개상과 소설·서적 유통관계 연구』(역락출판, 2007)
이중연, 『고서점의 문화사』(혜안, 2007)

논문

강명관, 「조선후기 서적 수입·유통과 장서가의 출현」(『민족문학사연구』 9, 민족문학사학회, 1996)
우정임, 「16세기 전반기 서사의 설치논의와 그 의미」(『역사와 경계』 54, 부산경남사학회, 2005)
주석
주1

세를 받고 책을 빌려주는 책방.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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