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강관 ()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경연(經筵)의 정4품 관직.
이칭
속칭
경연관(經筵官)
제도/관직
설치 시기
1392년(태조1)
소속
경연(經筵)
내용 요약

시강관(侍講官)은 조선시대, 경연(經筵)의 정4품 관직이다. 경연에서 진강(進講)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시강관은 태조 대에 강독관(講讀官) 4명에 속하였으며, 정종 대에 강독관이 시강관과 시독관으로 분화하였다. 세종 대에는 집현전 부제학이 겸직하였고, 성종 대에는 홍문관 관원 4명이 겸직하였다. 정조 대에는 규장각 설치 후 규장각 직각이 겸직하였다.

정의
조선시대, 경연(經筵)의 정4품 관직.
임무와 직능

경연(經筵)의 정4품 관직으로, 경연에서 주1을 담당하였다. 경연에서는 국왕에게 유교 경전과 역사서 등을 주2하고 이에 대해 논평과 토론을 하였다. 경연에서 주3의 강독을 담당하는 관원을 경연관(經筵官)이라고 하였는데, 참상관(參上官)으로 시강관 · 시독관(侍讀官) · 검토관(檢討官), 참하관(參下官)으로 사경(司經) · 설경(說經) · 전경(典經)이 있다.

시강관 이하 경연관을 경연낭청(經筵郎廳) 혹은 주4이라고 하며, 모두 홍문관(弘文館) 관원이 주5하였다. 시강관의 업무는 경연에서 강의를 하는 것이 주된 것이었다. 시강관은 경연 교재로 쓰는 경전이나 주6를 국왕에게 강론하고 국왕과 문답을 주고받았다. 시강관의 강의는 유생들을 궁궐에 불렀을 때에도 이루어졌다. 한편 시강관은 국왕이 성균관에 거둥하여 유생들의 공부 상황을 돌보고 공자에게 제향을 하는 ‘시학석전제(視學釋奠祭)’에 동행하여 참여하였다.

변천 사항

시강관은 정종 즉위 후 경연 기사에 등장하였다. 그 이전 태조가 즉위 직후 관제를 새로 정할 때 경연에는 종3품 강독관(講讀官) 4명, 정4품 검토관 2명을 두었다. 정종 대에 시강관과 시독관이 경연에 참여한 것을 보면 강독관이 시강관과 시독관으로 분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종 대에 집현전이 창설됨에 따라 1420년(세종 2)에 집현전 관원들이 경연관을 겸직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정3품 부제학(副提學)이 시강관을 역임하게 되었다.

예종이 즉위한 후 경연의 당하관 이하는 낭관 6명을 두고 모두 시강관이라고 불렀다. 성종이 즉위한 후 세조 대에 폐지한 집현전의 기능을 이어 홍문관을 만들었고, 홍문관 관원이 경연관을 겸직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이에 따라 시강관은 정3품 당하관 직제학 1명, 종3품 전한(典翰) 1명, 정4품 응교(應敎)1명, 그리고 종4품 부응교(副應敎) 1명 이렇게 모두 4명을 두는 것으로 『 경국대전』에 법제화되었다. 정조 대에는 규장각을 설치한 후 1781년(정조 5)에는 규장각 직각(直閣)이 본래 품계에 따라 시강관 · 시독관 · 검토관을 겸직하게 하였다.

의의 및 평가

시강관은 집현전 관원으로 녹관(祿官) 중 가장 품계가 높았고, 당상관이 임명되었다가 성종 대에는 홍문관의 정3품 당하관부터 종4품 관원이 임명되었다. 또한 경연관으로 국왕에게 진강을 하는 가장 높은 관직자였다. 태종은 경연관 1명을 불러서 주7 방식으로 경연을 하였는데, 이때 시강관은 1명만 불렀다. 그런 만큼 시강관의 위상은 경연관의 강관으로 가장 높은 지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경국대전(經國大典)』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대전통편(大全通編)』
『대전회통(大典會通)』
『성종실록(成宗實錄)』
『세종실록(世宗實錄)』
『예종실록(世宗實錄)』
『정조실록(正祖實錄)』
『정종실록(定宗實錄)』
『태조실록(太祖實錄)』
『태종실록(太宗實錄)』

단행본

권연웅, 『경연과 임금 길들이기』(지식산업사, 2015)
주석
주1

왕이나 동궁의 앞에서 학문을 강의하던 일. 또는 그런 사람.    우리말샘

주2

글을 읽고 그 뜻을 밝힘. 또는 그런 과목.    우리말샘

주3

경서(經書)와 사기(史記)를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4

조선 시대에, 정오품 통덕랑 이하의 당하관을 통틀어 이르던 말.    우리말샘

주5

자기의 본디 직무 외에 다른 직무를 겸함. 또는 그 직무.    우리말샘

주6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책.    우리말샘

주7

왕명으로 임금과 대면하여 정사에 대한 의견을 상주하던 일.    우리말샘

집필자
임혜련(충남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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