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본(東裝本)과 같은 고서의 표지에는 책의 서명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서명이 표기되어 있다. 표지에 기록된 제목을 표제(表題)라고 하는데, 표제는 일반적으로 앞표지의 좌측 상단에 위치한다. 표지에 표제를 바로 쓰기도 하지만, 별도의 종이 또는 비단에 표제를 적어 표지에 붙이는 경우도 있다. 이때 표제를 적은 별도의 종이 또는 비단을 제첨(題簽) 또는 제첨(題籤)이라고 한다. 실제 사용된 용례를 살펴보면 전자의 제첨(題簽)보다 후자의 제첨(題籤)이란 용어를 사용한 사례가 더 많다.
절첩본과 선장본은 표지의 좌측 상단에 붙였고, 두루마리 형태의 권자본에는 책을 펼쳤을 때 본문이 시작되는 바로 뒷면으로, 말았을 때 보이는 겉면의 가장자리 상단에 제첨을 붙였다. 제첨에는 주로 책의 서명인 표제와 책의 순서인 책차(冊次) 등을 기록하였다. 제첨에 기록된 표제는 각 권의 머리 부분에 있는 권수제(卷首題)와 동일한 경우도 있지만, 권수제의 일부를 생략한 간략 서명으로 표기된 경우가 많다. 책의 순서인 책차의 경우에는 전체 책수 가운데 몇 번째 책인지를 표기한 것으로, 전체 2책인 경우에는 첫 번째 책에 ‘건(乾)’, 두 번째 책에 ‘곤(坤)’ 등과 같이 표기하였고, 전체 3책인 경우에는 첫 번째 책에 ‘상(上)’, 두 번째 책에 ‘중(中)’, 세 번째 책에 ‘하(下)’ 등으로 표기하였다. 전체 4책인 경우에는 순서에 따라 각 책에 ‘원(元)’, ‘형(亨)’, ‘이(利)’, ‘정(貞)’ 등과 같이 책차를 표기하였다.
제첨은 주로 글씨에 능한 이가 직접 필사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19세기 이후에는 인쇄된 제첨의 사례가 많아졌다. 또한 별도의 종이 또는 비단에 글자로만 표제를 표기한 경우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 제첨의 가장자리에 사각 테두리[四周邊欄]가 있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고서 등의 서지사항을 조사하거나 판본을 확인할 때에는 표지에 제첨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하고, 제첨이 있다면 필사된 것인지 인쇄된 것인지를 확인해야 하며, 사각 테두리의 유무 등을 확인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제첨은 서책을 접할 때 가장 먼저 보게 되는 부분으로, 책의 얼굴과 같다. 그러므로 서책을 소장하거나 확인할 때 제첨의 서명, 글씨체, 재질 등은 서책의 외적 형태를 파악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문집 등의 문헌에서 제첨에 대한 기록이 많은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임백연(任百淵)의 『경오유연일록(鏡浯遊燕日錄)』에는 “여양역(閭陽驛)에 이르러 한 점사 앞에 말을 내리니, 주인이 황색으로 장정한 책 하나를 주었는데, 제첨(題籤)이 ‘문창효경(文昌孝經)’이었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는 자신이 입수한 서책을 맨 처음 확인할 때 제첨의 표제가 가장 중요한 요소였음을 알려준다. 김정희(金正喜)의 『완당전집(阮堂全集)』에는 “집에 보관한 서책 가운데 제첨(題籤)을 써 붙이지 않은 법첩(法帖)이 있는데, … 이것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진첩(眞帖)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는 법첩의 내용을 파악할 때 제첨의 유무 여부를 가장 먼저 확인하였음을 알려주는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