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금자 『묘법연화경』 제3권(白紙金字 『妙法蓮華經』 第3卷)은 고려의 가장 말기에 해당하는 공민왕 12년(1362)과 우왕 3년(1377) 사이에 제작된 『묘법연화경』 제3권을 백지에 금자로 서사한 사경이다. 표지와 변상도, 본문 등이 모두 온전히 갖추어져 있는 절첩본이다. 표지는 금니와 은니로 보상연화문을 그렸고 제첨과 연화대좌, 보개 등은 금니로, 경명은 금자로 사성되어 있다. 변상도도 금니로 그려졌으며, 본문에는 금니로 천지계선이 구획되어 있으며 한 면 6행, 1행 17자로 서사되어 있다. 사경지는 두텁게 도침되어 있고 배면에 장차는 없다.
절첩본의 접은 상태는 세로 32.9cm, 가로 10.8cm이다. 변상도의 세로는 21.1cm, 폭은 46.4cm이며, 본문 계선은 21.3cm, 계폭은 1.9~2.0cm, 천두는 6.8cm, 지각은 4.9cm이다. 사경지 한 장의 길이는 63.8~64.0cm이다.
변상도는 오른편의 석가설법도가 전체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넓게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좁은 공간에 「약초유품」, 「산초이목」 등 경의 내용이 그려져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권속들의 얼굴이 매우 크고 광배의 크기가 일정하지 않는 등 인물 표현이 도식화되어 있고 설법을 듣고 있는 청중의 인물 표현도 얼굴이 길어지거나 타원형의 광배를 보이는 등 균형미가 떨어진다. 모두 지방색이 두드러진 개인 발원 사경의 특징이다. 권말에 발원자와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다.
사경의 제작 시기는 공민왕 12년(1362)부터 우왕 3년(1377) 사이에 제작된 사경이다. 공덕주로 봉순대부 전판위위사인 김광우와 철성군부인 이씨의 발원으로 이루어진 사경으로 철성군부인 이씨는 호림박물관 소장 백지묵서 『묘법연화경』 7권본(우왕 3)에 각 권말과 7권 마지막 발원문에 등장하는 ‘先妣鐵城郡夫人李氏’와 동일 인물이다.
변상도가 앞에 붙어 있으며 본문은 법화경 권제3의 내용으로 제5 약초유품(藥草喩品), 제6 수기품(授記品), 제7 화성유품(化城喩品)이 수록되어 있다.
고려 사경의 실례를 보여 주는 것으로 특히 권말에 발원자와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어 고려 최말기(最末期) 사경의 실례를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