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인본은 이동성이 떨어지는 석비의 글씨나 그림 등의 내용을 원형 그대로 종이 매체에 수록하여 휴대하며 소장할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주로 비석에 새겨진 글씨를 종이에 그대로 떠내어 낱장의 형태 또는 절첩(折帖)의 서책 형태로 만들었다. 탑인본은 석비를 대상으로 제작된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밖에 청동기, 기와, 목판, 갑골 등 다양한 재료의 글씨나 문양을 대상으로 제작되었다. 특히 명필의 법첩(法帖) 글씨나 특정 인물의 신도비명 등을 주요 대상으로 삼아 명필의 글씨를 감상하거나 특정 인물을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탑인본(搨印本)은 이동성이 떨어지는 석비(石扉)의 글씨나 그림 등의 내용을 원형 그대로 종이 매체에 수록하여 휴대하고 소장할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다. 탑인본은 탑본(搨本) 또는 탁본(拓本)이라고도 하며, 주로 비석에 새겨진 글씨를 종이에 그대로 떠내어 낱장의 형태 또는 절첩(折帖)의 서책 형태로 제작된다. 탑인본은 비석 등의 각석(刻石) 이외에도 청동기, 기와, 목판, 갑골 등 다양한 재료의 글씨나 문양을 대상으로도 제작되었다. 특히 명필의 법첩 글씨나 특정 인물의 신도비명 등을 탑인본의 대상으로 삼아 명필의 글씨를 감상하고 학습하거나 특정 인물의 생애를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전통시대 문헌에서 탑인본은 탑본과 탁본이라는 용어 이외에도 묵본(墨本), 비본(碑本), 비인본(碑印本) 등의 용어가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탑본과 묵본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탑인본은 전통적인 인쇄와 비교하였을 때 글자의 새김이나 인쇄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전통적 인쇄는 대부분 목판이나 석판 등의 재료를 글자를 제외한 여백면을 모두 파내는 양각 새김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또한 글자를 거울에 비치는 것처럼 좌우 반전으로 새겨 글자의 표면에 먹을 바른 다음 그 위에 종이를 올려 인쇄하였다. 반면 탑인본은 대부분 글자 부분만 파내는 음각 새김으로 제작되었고, 바탕 재료에 좌우 반전 없이 원래의 모양대로 새기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또한 탑인본은 새겨진 글씨나 내용 표면에 물을 뿌려 종이를 붙이고 먹을 묻힌 솜방망이로 종이 위를 두드려 글자의 원형 그대로 종이에 떠내는 방식으로 인쇄되었다.
대표적인 탑인본으로는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를 비롯하여 역대 서예 명적을 보존하고 학습 · 감상하기 위해 송대에 제작된 대표적 법첩(法帖)인 『순화각첩(淳化閣帖』)(992년)을 들 수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 이우(李俁, 16371693)가 엮은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 김재로(金在魯, 16821759)와 후인이 엮은 『금석집첩(金石集帖)』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