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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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1780년, 성절사에 비장으로 연암 박지원과 함께 수행하였던 노이점이 쓴 연행록 필사본.
문헌/고서
저자
노이점
권책수
1책 82장
판본
필사본
내용 요약

『수사록』은 1780년(정조 4) 성절사(聖節使)에 비장(裨將)의 직함으로 연암 박지원과 함께 수행하였던 노이점이 쓴 연행록(燕行錄)으로 필사본 1책 82장이다. 『수사록』은 출발하면서부터 날씨와 그날의 일과, 느낌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중국에 대한 견문과 만난 사람들, 산천, 고적을 비롯하여 중국의 경학(經學)과 문장을 토론하는 내용도 있다.

목차
정의
1780년, 성절사에 비장으로 연암 박지원과 함께 수행하였던 노이점이 쓴 연행록 필사본.
내용

『수사록(隨槎錄)』은 1780년(정조 4) 성절사(聖節使)에 비장(裨將)의 직함으로 연암 박지원과 함께 수행하였던 노이점이 쓴 주1으로 필사본 1책(82장)이다.

이 책의 저자인 노이점(盧以漸, 1720~1788)은 충청도 공주 사람으로 본관은 만경(萬頃)이고 자는 사홍(士鴻), 호는 추산(楸山)으로, 부친은 무과 출신인 노언준(盧彦駿)이었다. 노언준의 두 아들 중 노이점은 서자로 족형인 노이형(盧以亨)에게 글을 배웠고 1756년(영조 32)에 37세의 늦은 나이로 진사에 합격하였다. 그후 장릉참봉(長陵參奉)과 한성부의 서부 봉사(奉事)와 같은 낮은 직을 거쳤다. 『만경노씨세보(萬頃盧氏世譜)』에 따르면, 그가 지은 유고(遺稿)가 21권이었고 그의 이름을 중국까지 알렸다는 점은 연행 시 몽고인 박명(博明)과 교류한 점 등을 반영한 것이며 국내에서는 동시대의 인물이던 시인 신광하(申光河, 1729~1793)와 시를 주고 받기도 한 점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노이점이 연행하였던 1780년 5월에 조선 정부는 청나라 건륭제의 79회 생일을 축하드리고 바로 전해인 1779년 사행시 연경의 숙소에서 난 화재를 황제가 용서해 준 것에 감사를 표하는 것이었다. 『수사록』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수행에는 정사 박명원(朴明源)을 비롯하여 일부 책문에서 돌아간 사람을 포함하여 사람 270명, 말 194필이었다.

5월 25일 출발하여 8월 1일에 북경에 도착하였지만 황제가 열하(熱河)에서 피서를 하고 있어서 노이점은 북경의 숙소인 서관(西館)에 잔류하였고 체류 기간은 45일이었다. 주2는 9월 17일에 출발하여 10월 27일에 서울에 도착하는 것으로 전체 145일 간의 일기이다. 『수사록』은 한 면에 13줄, 한행에 23~24자를 기록하면서 수정한 부분이 많다. 본문 중에는 상단의 여백에 설명을 달거나 문장 중에서도 작은 글씨로 주를 달았다. 이러한 조건들은 이 판본을 초고가 아니라 재정리한 사본으로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수사록』은 출발하면서부터 날씨와 그 날의 일과, 느낌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중국에 대한 견문과 만난 사람들, 산천, 고적을 비롯하여 중국의 경학(經學)과 문장을 토론하는 내용도 있다. 책의 뒷 부분에 수록된 자료는 ① 자의주자연경로정기(自義州至蓮經路程記), ② 여박첨사서(與博詹事書), ③ 서관문답(西館問答), ④ 반선시말(班禪始末)과 같이 연행의 노정기와 필담으로 사귄 박명(博明)에게 보낸 편지, 박지원에 대한 칭송, 티벳의 승려에 관한 내용들이다.

이 필사본은 61세 무명의 수행원이 쓴 진솔한 사적 기행문으로 당시 44세였던 연암 박지원의 자유 분방한 사고와 행동과는 다른 차원의 인물이었다. 그는 서얼 출신의 고지식한 선비로서 옛 시를 사랑하고 춘추대의와 성인의 법도를 지키는 자부심이 강하여 당시 조선 평균적인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수사록』과 『열하일기』는 형식과 내용에서 차이가 있는데, 『수사록』은 시간 진행에 따라 서술한 것이고 『열하일기』는 불경에서 한양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생략된 점이 다르다.

내용면에서 『수사록』은 대청관계에 있어서 명을 숭상하고 보수적으로 오랑캐를 멸시하면서 북벌을 주장하는 상사이 입장이지만 『열하일기』는 청으로부터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야한다는 하사의 입장에서 서술한 것이다.

특히 전통 유학자의 입장에서 노이점은 연암의 지전설에 대하여 중화 중심인 주자설에 어긋난 것이라 비판을 하면서도 새로운 견해와 지식을 가진 연암에 대하여 인정과 경외심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 자료는 연행의 사적 일기라는 자체도 중요하지만 『열하일기』를 쓴 연암과 같은 상황에서의 다른 관점과 이해 비교 등 시대적 배경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논문

남권희, 「새로 발견된 노이점의 『수사록』에 대한 서지적 연구」(『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 23, 한국도서관정보학회, 1995)
주석
주1

조선 시대에, 사신이나 그 수행원이 중국을 다녀와서 보고 느낀 것을 쓴 기행문. 박지원의 ≪열하일기≫, 홍대용의 ≪을병연행록≫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2

돌아오는 길. 우리말샘

집필자
남권희(한국전적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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