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문초(文初). 호는 진택(震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신호(申澔)이며, 어머니는 완산이씨(完山李氏) 판서(判書) 이천령(李千齡)의 딸이다.
1751년(영조 27)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그 후로 전국을 유람하고, 1778년 금강산(金剛山)을 구경하고, 1784년 백두산(白頭山)에 올라서 대각산(大角山)에서 산제(山祭)를 지내고, 추풍등대각(秋風登大角)에 낙일견중원(落日見中原)의 시구를 남겼다.
1786년 조경묘참봉(肇慶廟參奉)에 제수되고 그 뒤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형조좌랑·인제현감(麟蹄縣監)·우승지·공조참의를 거쳐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좌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신광하는 일생 동안 시문(詩文)을 좋아하여 삼천리 강산을 유람하며 지은 시를 『남유록(南遊錄)』·『사군록(四郡錄)』·『동유록(東遊錄)』·『북유록(北遊錄)』·『백두록(白頭錄)』·『풍악록(楓岳錄)』·『서유록(西遊錄)』 등으로 묶어서 2,000여수의 주옥같은 시를 남겼다.
「곡석북선생(哭石北先生)」 100수, 『동해록(東海錄)』 중의 「금강산가(金剛山歌)」 ·「구룡폭포가(九龍瀑布歌)」 등은 소슬한 그의 진경을 묘사하고 있고, 『서유기(西遊記)』중의 「파옥가(破屋歌)」와 그의 만년작인 「군불견진택선생가(君不見震澤先生歌)」 등은 백미(白眉)의 시구라 할 것이다.
그 외에도 단양산수(丹陽山水)의 청초하고도 기이한 풍경을 그림같이 그려내는 사군기행(四郡紀行)이나 50여 일을 답사하며 그림처럼 묘사한 금강유람(金剛遊覽)의 기행은 고금을 통해 가장 상세한 기행문이라 할 것이다.
신광하는 목만중(睦萬中)·이헌경(李獻慶)·정범조(丁範祖) 등과 함께 당대 사문장(四文章)으로 꼽히었다. 저서로는 『진택문집(震澤文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