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원본은 내화(來華)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利瑪竇]와 서광계(徐光啓)가 함께 번역하여 1607년(선조 40)에 간행한 유클리드 『원론』의 한역서이다. 6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용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전(前)6권을 다룬다. 예수회사 크리스토프 클라비우스의 『유클리드원론주해』(1574 초판)가 번역의 저본이다. 정의, 공준, 공리 등과 같은 제1원리로부터 미지의 명제를 축차적으로 추론해 가는 그리스 수학의 연역적, 공리계적 사유가 처음으로 중국에 전해져서 중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 적지 않은 사상사적 영향을 미쳤다.
『기하원본(幾何原本)』의 저본은 크리스토프 클라비우스(Christoph Clavius, 15381612)가 저술한 『유클리드 원론(Elementa)』에 대한 주석서(『유클리드原論註解』, Commentaria In Elementa Geometria)이다. 초판본은 1574년(선조 7)에 간행되었다. 클라비우스는 독일 출신의 예수회사로 저명한 수학자, 천문학자였고, 1583년(선조 16)에 반포된 그레고리오력 개력(改曆)의 중심인물이었다. 역자(譯者)는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 15521610)와 중국인 서광계(徐光啓, 15621633)로, 리치가 구술하고 서광계가 받아적었다. 단, 전역(全譯)이 아니라 유클리드 원론의 내용 중 전(前)6권까지의 부분역이다. 후9권은 청말(淸末)에 이르러 영국인 선교사 와일리(Alexander Wylie, 偉烈亞力, 18151887)와 중국인 수학자 이선란(李善蘭, 1810~19882)에 의해 번역되었지만, 흔히 『기하원본』이라고 하면 전자만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목간본은 1607년(선조 40)에 6권 4책으로 간행되었다. 단 현재 입수 가능한 판본은 1607년 초간본이 아니라 리치 사후에 유품에서 본인이 자필로 교정을 본 초간본이 발견되어 선교사 롱고바르디(Nicolo Longobardo, 龍華民, 15591654) 등과 함께 서광계가 1611년(광해군 3)에 재각(再刻)한 재교본(再校本)이다. 이후 1627년(인조 5)경에 이지조(李之藻, 15711630)에 의해 간행된 서학서 총서 『천학초함(天學初函)』에도 이 재각본이 수록되었다. 모두(冒頭)에 서광계의 각기하원본서(刻幾何原本序), 리치의 역기하원본인(譯幾何原本引), 서광계의 기하원본잡의(幾何原本雜議), 제기하원본재교본(題幾何原本再校本) 등이 붙어 있다. 청대(淸代)에는 건륭기(乾隆期)에 편찬된 『사고전서(四庫全書)』에 편입되었으며, 이외에도 도광(道光) 연간에 간행된 『해산선관(海山仙館)』 총서본 등이 있다.
마테오 리치는 중국 선교에 있어 개력의 기운이 급진전한 명말(明末)의 정치 상황과 맞물려서 서양의 천문학과 수학을 기독교 선교에 적극 이용하려는, 이른바 적응주의 선교 방침을 입안하였다. 이 적응주의 선교 방침은 후대에 서양의 학문으로 유교의 불비(不備)를 보완한다는 보유론(補儒論)으로 이어졌다. 이 첫 번째 결실이 서광계와 함께 번역한 클라비우스 신부의 『유클리드원론주해』의 번역서 『기하원본』이다. 단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전역이 아니라 전(前)6권까지의 부분역이며, 클라비우스의 주석의 경우 주된 주석(首論)을 제외한 번쇄한 해설은 일괄 생략하였다. 서광계는 전역을 원했었지만, 마테오 리치의 의사로 6권에서 번역이 중단되었는데, 이는 서양의 경우에도 보통 대학 과정에서 6권 이상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서광계가 과거에 급제한 1604년(선조 37)부터 매일 리치의 자택을 방문하여 하루 3~4시간씩 번역에 힘썼다고 하는데, 번역문을 세 번 다듬었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고 한다. 서광계가 스스로 재교본 위에 교정을 가하거나 문장을 수정한 기하원본 한 질이 지금도 상해 서가회(徐家匯)에 전한다.
『기하원본』의 구성은 『원론(原論)』과 동일하며 최초의 4권까지는 평면 기하학을 다룬다. 제1권에서는 제1원리라고 불리는 정의, 공리, 공준을 논하고, 평면 기하학의 기초가 다뤄진다. 제2권에서는 직각 평행 사변형을 다루고, 제3권에서는 원, 제4권에서는 원과 다각형의 내외접의 평면 기하학을 다룬다. 제5권에서는 양의 비례 문제를 다루고, 제6권에서는 비례론을 이용하여 평면 기하학을 확장한다. 『원론』의 내용 중 『기하원본』이 다루지 않은 내용은 제7권 이후의 정수론, 통약 가능성 · 불가능성, 입체 기하학, 정다면체론 등이다.
동아시아 과학의 일반적인 성격이 귀납적 지식이라면, 유클리드 『원론』의 특징은 연역적 공리계 지식 체계라는 점에 있다. 우선 증명 불가능하며 자명한 명제를 정의(界說), 공준(求作), 공리(公論)라고 불리는 제1원리로 설정한다. 예를 들어 정의에는 ‘점은 크기가 없다.’, ‘선이란 길이만 있고 넓이가 없다.’와 같은 것이 포함되고, ‘전체는 부분보다 크다.’, ‘평행선은 교차하지 않는다.’와 같은 유명한 명제가 공리에 포함된다.
공리계란 이러한 제1원리에서 출발하여 축차적이고 연역적으로 증명 가능한 일군의 명제 지식 체계를 사상률(思想律)이라고 하는 논리적 수법을 동원하여, 내적 오류로부터 자유로운 무모순 체계를 형성해 가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전제를 부정하지 않는 한 결과가 부정될 수 없는 체계이다. 다만, 『기하원본』의 제1원리의 구성 방식은 현재 통용되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구성과는 달리 클라비우스에 의해 재구축된 형식에 따른다.
『기하원본』의 공리계적 사유는 수학적, 연역적 지식이 갖는 보편적 성격을 특징으로 하며, 증명을 통해서만 그 정당성이 확보된다. 리치는 이러한 객관주의와 보편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연역적 지식의 무모순성에 근거하여 송학(宋學)적 격물궁리(格物窮理)를 서학(西學)으로 보완할 것을 주장하였다. 수(數)로부터 리(理)에 도달하려는 이러한 방법론적 전환은 보유론의 입장에서 청대의 고증학자들로 하여금 송학을 비판하며 논증성과 수리성을 중시하는 경향을 갖는데 크게 일조하였으며, 명말 이후 서학이 체계적으로 중국에 소개되는 데 매우 긍정적 역할을 하였다. 서학중원설(西學中源說)의 영향 아래서 편찬된 『사고전서』에서조차 『기하원본』은 ‘서학의 변면(弁冕)’으로 높이 평가하였다.
현대의 동아시아 수학 용어 중에서는 『기하원본』의 번역어가 여전히 남아 있다. 기하, 점, 선, 면, 각(角), 계(系, corollary)와 같은 용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