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중원설(西學中原說)에 따르면, 고대 중국에서는 성인들이 남긴 과학 지식, 구체적으로는 천문학과 수학이 온전히 갖추어져 있었는데, 전국시대(戰國時代)의 혼란과 진(秦)나라에 의한 분서(焚書)의 환란으로 인해 고대 성인의 학문이 중국 땅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런 와중에 일부 학자들, 즉 주인(疇人)의 자제(子弟)들이 외국으로 흩어졌는데 그중 일부가 서쪽으로 가서 학문을 전한 것이 서양에서 천문학과 수학이 정교하게 발전하게 된 이유였다고 본다. 따라서 서학중원설은 16세기 말 이후에 중국으로 전래된 서양 과학 지식의 원류가 애초에 중국에서 유래된 것이었다는 주장이다.
16세기 말 이후 중국으로 전래된 서양의 천문학과 수학은 중국 학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특히 중국 전통의 역법(曆法)으로는 일식과 월식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 어려웠던 반면, 서양 천문학 지식으로는 이를 정밀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또한, 땅이 구체라고 하는 지구설은 중화주의(中華主義)적 사고를 흔드는 이론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중국의 지식인들은 서학중원설의 관점에서 중국 고전 서적 속에서 지구설을 비롯한 서양 과학 지식의 문헌적 기원을 탐색하여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작업은 특히 매문정(梅文鼎, 1633~1721)에 의해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후 ‘서학중원설’은 중국의 지식들인들 사이에서 폭넓게 공유되었다.
서학중원설은 조선으로도 전해져서 ‘오랑캐인 청나라와 서양’의 학문을 수용하는 논리로 사용되었으며, 그 시초는 바로 서명응(徐命膺, 1716~1787)이었다. 서명응은 『보만재총서(保晩齋叢書)』에 수록된 여러 저술에서 서양 선교사에 의해 중국으로 전해진 서양의 과학과 수학을 구고수법(勾股數法)이라고 지칭하며, 고대 중국 성인들이 남긴 유법(遺法)으로 파악하면서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서명응 이후의 조선 유학자들도 서학중원설에 대체로 동의하였으나,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남병철(南秉哲)에 의해 비판되기 시작하였다.
16세기 말 이후 중국에 전래된 서양의 과학 지식이 애초에 중국 고대 성인들의 학문에서 기원한 것이라는 서학중원설은 17~18세기 중국과 조선의 지식인들이 가진 서양 학문에 대한 거부감을 완하하고 서양의 지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