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만재총서는 1783년(정조 7)에 조선 후기 유학자 서명응이 지은 저술들을 모아서 편찬한 총서이다. 이 총서는 천문학과 지리학 등을 포함하는 자연 과학의 지식들을 방대한 분량으로 수록하고 있다. 『보만재총서』는 모두 13종의 저술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분량은 60권 31책에 달한다. 『보만재총서』에 수록된 13종의 저술들을 앞에서부터 나열하면 『선천사연』, 『상서일지』, 『시악묘계』, 『대학직지』, 『중용경위』, 『주사』, 『위사』, 『본사』, 『비례준』, 『선구제』, 『원음약』, 『참동고』, 『고사십이집』이다.
서명응(徐命膺)의 자(字)는 군수(君受)이고, 호는 보만재(保晩齋), 담옹(澹翁)이다.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시호(諡號)는 문정(文靖)이다. 그는 서성(徐渻)의 5세손이자 이조판서 서종옥(徐宗玉)의 아들이며, 정조대에 영의정을 지낸 서명선(徐命善, 1728~1791)의 형이자, 영조대에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1770) 「상위고(象緯考)」를 집필하고 정조 말년에는 『국조역상고(國朝歷象考)』 편집을 맡은 서호수(徐浩修, 1736-1799)의 생부(生父)이다. 보만재(保晩齋)라는 호는 만년에 정조로부터 받은 것이다.
서명응은 1735년(영조 11) 생원(生員)으로서 동궁세마(東宮洗馬)에 임명되어 정조의 학문 수련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후 그는 1754년(영조 30)에 증광시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병조좌랑(兵曹佐郞), 정언(正言), 부수찬(副修撰), 헌납(獻納), 부응교(副應敎) 등을 역임하고, 1755년(영조 31)에 사은서장관(謝恩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759년(영조 35)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임명된 이후 대사간(大司諫),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 대사헌(大司憲) 등의 요직을 거친 후 이조참의(吏曹參議), 황해도 관찰사, 한성부판윤 등을 거쳐 1769년(영조 45) 『동국문헌비고』 편집당상과 형조판서・이조판서・호조판서・병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정조 즉위 직후인 1777년(정조 1)에 규장각(奎章閣)이 세워졌을 때 첫 번째로 규장각제학(奎章閣提學)에 임명되었으며,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수어사(守禦使) 및 대제학(大提學)을 거쳐 1780년(정조 4) 봉조하(奉朝賀)에 이르렀다. 은퇴 이후에도 그는 규장각에서 여러 가지 편찬 사업에 참여하는 등 죽을 때까지 규장각 운영에 절대적인 공헌을 하였다.
『보만재총서』는 현재 필사본으로만 남아 있으며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2종,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1종, 간송미술관에 1종이 소장되어 있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2종의 필사본에는 각각 〈대학원 貴235〉와 〈육당D1A118〉의 도서번호가 붙어 있다. 이 중에서 〈대학원 貴235〉본은 전체 60권 31책 중에서 2권 1책(제25책, 권47~48) 부분이 결실된 것을 제외하면 완질에 가까운 판본이다. 결실된 부분은 『참동고(參同攷)』 (전체 6권) 부분에서 제5권, 제6권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에 비해 〈육당D1A118〉본은 7책의 분량만 남아 있는 결본으로서, 『상서일지(尙書逸旨)』, 『주사(疇史)』, 『본사(本史)』, 『선구제(先句齊)』, 『원음약(元音鑰)』, 『고사십이집(攷事十二集)』 부분이 남아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는 필사본(古0270-11)은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대학원 貴235〉본과 마찬가지로 60권 31책 중에서 제25책(『참동고』의 제5권, 제6권)에 해당하는 부분이 결본이다. 이런 점을 토대로 판단하건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본은 고려대학교 도서관본을 저본으로 하여 전사(轉寫)된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간송미술관에는 고려대학교에서 결실된 부분까지 포함된 완질본이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까지 외부로 공개되지 않았다.
『보만재총서』를 구성하는 13종 31책(60권)을 책순으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한편, 『보만재총서』는 경사자집(經史子集)의 체재를 취하여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 중에서 『선천사연』은 역학(易學) 관련 저술로서 소옹의 선천역(先天易)에 영향을 받아서 ‘복희(伏羲)의 선천사도(先天四圖)를 네 가지의 수단(言, 象, 數, 意)으로 해석하고자 한 책이다. 서명응은 『보만재총서』의 중심에 ‘선천(先天)’의 이론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이 『선천사연』을 제일 첫머리에 배치하였다. 이어서 『상서일지』는 천문학 관련 내용을 이용하여 『상서(尙書)』에 대한 경학적 해석을 진행한 저술로서 『상서』 58편에 담겨 있는 고대 역상학(曆象學)의 제도적 측면을 정리하고 있다. 이어서 『시악묘계』는 시경의 내용을 해석한 저술이며, 『대학직지』와 『중용경위』는 경학 관련 저술이다. 다음으로 『주사』는 평양에 남아 있는 기자(箕子)의 유적에 대해 논의한 저술로서 그가 평양감사 시절에 저술한 『기자외기(箕子外紀)』의 수정본이다. 다음으로 『위사』는 지리학 저술로서 지구설의 관점에서 세계의 지리를 위도에 따라 배열하여 정리한 저술이다. 『본사』는 농학 관련 저술이다. 『비례준』과 『선구제』는 천문학 저술로서, 『비례준』은 하늘의 별자리를 정리한 천문(天文)과 관련된 저술이고 『선구제』는 역법 관련 저술이다. 또한 『원음약』은 음악학과 관련된 저술이며 『참동고』는 도교에 관한 저술이다. 마지막으로 『고사십이집』은 『고사촬요(攷事撮要)』의 전통을 이은 유서류 서적으로서 그가 왕명으로 편찬한 『고사신서(攷事新書)』의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다.
서명응이 지은 『보만재총서』는 천문학과 지리학, 농학, 음악학, 연단술, 역학(易學), 경학을 아우르는 저술로서 서명응 자신이 서문에서 말한 것처럼 ‘총서(叢書)’라는 이름에 걸맞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이 책이 담고 있는 지식의 분량과 수준, 분야의 다양성을 생각하건대, 『보만재총서』는 조선시대 최대의 과학 기술 관련 저작이라고 평가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