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구제는 조선 후기 유학자 서명응이 지은 『보만재총서』에 포함된 천문학 저술이다. 이 책에서 그는 역학과 천문학 지식을 통합하여 새로운 상수학적(象數學的) 논의를 전개하였다. 서명응은 고대 성인들이 남긴 선천역(先天易)과 구고법(句股法)의 내용을 파악해내고 이를 통해서 천문학과 역학을 포함하여 성인들의 지식을 복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관념을 토대로 서명웅은 선구제에서 복희의 선천역에 따라서 구고(勾股)의 수법(數法)과 칠정(七政), 즉 태양과 달, 오행성의 운행에 대한 계산법을 바로잡고자 하는 논의를 담았다.
서명응(徐命膺)의 자(字)는 군수(君受)이고, 호는 보만재(保晩齋), 담옹(澹翁)이다. 본관은 달성(達城), 시호(諡號)는 문정(文靖)이다. 그는 서성(徐渻)의 5세손이자 이조판서 서종옥(徐宗玉)의 아들이며, 정조대에 영의정을 지낸 서명선(徐命善, 17281791)의 형이자, 영조대에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1770) 「상위고(象緯考)」를 집필하고 정조 말년에는 『국조역상고(國朝歷象考)』 편집을 맡은 서호수(徐浩修, 17361799)의 생부(生父)이다. 보만재(保晩齋)라는 호는 만년에 정조로부터 받은 것이다.
서명응은 1735년(영조 11) 생원(生員)으로서 동궁세마(東宮洗馬)에 임명되어 정조의 학문 수련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후 그는 1754년(영조 30)에 증광시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여러 벼슬들을 거쳐 1769년(영조 45) 『동국문헌비고』 편집당상과 형조판서・이조판서・호조판서・병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정조 즉위 직후인 1777년(정조 1)에 규장각(奎章閣)이 세워졌을 때 첫 번째로 규장각제학(奎章閣提學)에 임명되었으며,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수어사(守禦使) 및 대제학(大提學)을 거쳐 1780년(정조 4) 봉조하(奉朝賀)에 이르렀다. 은퇴 이후에도 그는 규장각에서 여러 가지 편찬 사업에 참여하는 등 죽을 때까지 규장각 운영에 절대적인 공헌을 하였다.
『선구제(先句齊)』는 『보만재총서(保晩齋叢書)』에 포함된 13종의 저술 중 아홉 번째에 수록되어 있다. 전체 31책 60권으로 이루어진 『보만재총서』에서 선구제는 제20책에 수록되어 있으며, 상하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사자집(經史子集)의 체재로 이루어진 『보만재총서』에서 자여(子餘)의 부분에 속한다. 『보만재총서』에 수록된 『비례준(髀禮準)』이 천문 관련 저술이라면, 선구제는 역법 관련 저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선구제』는 『보만재총서』를 구성하는 다른 저술들과 마찬가지로 현재 필사본으로만 남아서 전해진다. 『보만재총서』는 현재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2종(대학원 貴235, 육당D1A118),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1종(古0270-11), 간송미술관에 1종이 소장되어 있는데, 『선구제』는 이들 필사본 판본들 중에서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육당D1A118〉본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으며, 나머지 3개의 판본들에 수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선구제』는 권수(卷首)에 서명응의 「서문(序文)」과 「총목(總目)」이 있고, 이어서 본문에 「황적제(黃赤齊)」, 「상한제(象限齊)」, 「극도제(極度齊)」, 「중성제(中星齊)」, 「지원제(地圓齊)」, 「일전제(日躔齊)」, 「월전제(月離齊)」, 「오성제(五星齊)」, 「의상제(儀象齊)」, 「규표제(圭表齊)」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황적제」, 「상한제」, 「극도제」, 「중성제」에서는 역법에서 사용하는 황도(黃道), 적도(赤道), 북극(北極), 상한(象限), 중성(中星)의 개념을 설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별들의 좌표를 구하는 방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 중에서 상한이라는 개념은 전체 천구의 도수를 360도로 설정할 때 90도에 해당하는 구간을 지칭하는 말이다. 다음으로 「지원제」에서는 지구가 둥근 이치와 이로부터 발생하는 각지시차(各地時差)와 지반경차(地半徑差) 등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이어서 「일전제」는 태양의 운동, 「월전제」는 달의 운동, 「오성제」는 오행성의 궤도 계산과 일식(日食), 월식(月食)의 계산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의상제」는 천문관측 기구들을 설명한 부분이고, 「규표제」는 태양의 그림자[日影]로 시각을 측정하는 기구인 규표(圭表)에 대해서 서술한 부분이다. 『선구제』의 내용의 상당 부분은 당시 중국을 거쳐 전해진 서양 천문학의 지식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서명응이 전문적인 역법 지식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서명응에 따르면, 서양 천문학은 고대 성인의 시대에 존재하였던 선천학(先天學)에 대한 용(用)이며, 선천학은 서양 천문학의 체(體)다. 선천의 용(用)인 구고(句股, 올바른 천문학 지식)는 서양에 전래되었으나 중국에서는 사라졌기 때문에, 중국 천문학은 일월의 교식(交食)과 오행성의 운동을 제대로 예측할 수가 없었다. 반면에 서양에서는 구고의 체(體)인 선천(先天)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서양 천문학이 더욱 간단해지고 융성해질 수가 없었다. 이것은 체와 용인 선천학과 구고가 중국과 서양에서 각각 별도로 유리되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의 선천학과 서양의 천문학은 함께 구비되어야만 각각 올바르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명응이 『선구제』를 지은 목적은 이 둘을 체용(體用)으로 겸비함으로써 ‘가지런한 천문학 지식’ 즉 성인의 유법(遺法)을 복구하려는 데에 있다.
『선구제』의 내용은 17세기 말 이후 중국을 통해 조선에 전해진 서양 천문학의 지식을 토대로 저술된 것이다. 특히 『선구제』 본문의 상당 부분은 청나라의 강희제(康熙帝) 때에 편찬된 『역상고성(曆象考成)』의 내용을 토대로 서술된 것으로 보인다.
『선구제』의 내용을 통해서 서명응은 당시 새롭게 전래된 서양의 천문학을 수용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전통의 지식, 즉 동아시아의 천문학, 역학(易學) 지식들과 통합하여 하나의 새로운 천문학 체계를 구축하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