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황(姜世晃)
64세에 기로과(耆老科)에, 66세에는 문신 정시에 수석 합격하였다. 관직은 영릉 참봉(英陵參奉), 사포 별제(司圃別提), 병조 참의,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 등을 두루 거쳤다. 69세에 정조(正祖) 어진 제작의 감독을 맡았다. 이 때 당시 화원 한종유(韓宗裕), 이명기(李命基)에게 초상을 그리게 하였다. 할아버지 강백년(姜柏年), 아버지 강현에 이어 71세 때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감으로써 이른바 삼세기영지가(三世耆英之家)의 영예를 얻었다. 1785년 중국 건륭제의 나이 75세, 즉위 50년을 축하하는 천수연에 참석하기 위해 파견된 사행단의 부사(副使)가 되어 북경을 다녀왔다. 76세 때 금강산 유람을 하였다. 이 때마다 기행문과 실경 사생을 남겼다. 그의 생애에 있어서 관직 생활과 예술 활동은 영 · 정조의 배려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더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