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산성 출토 목간(二聖山城 出土 木簡)
이성산성 출토 목간은 다면형·원주형·장방판형·홈형 등 다양한 형태를 띄고 있으며, 이는 신라목간의 일반적 특징으로 이해되고 있다. '무진년(戊辰年)'명 목간은 3면에 걸쳐 26자가 기록되어 있는데, [앞면] 戊辰年正月十二日朋 南漢城道使…, [옆면] 須城道使村主前南漢城…, [뒷면] ■■浦 ■■■■■■…이다. 목간에서 남한성과 수성이라는 지명과 더불어 도사(道使)라는 지방관이 보여 지방행정과 관련해 이성산성이 지방통치의 거점으로서 기능하던 곳임을 추측할 수 있다. 또한 벼루의 출토는 문방구의 유통과 소비라는 측면에서 볼 때, 문서행정과 관련하여 국가권력이 율령국가의 지배도구였다는 일본의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하겠다. 32번 목간의 일부 글자를 '욕살'로 판독하여 고구려 지방 관직으로 이해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