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모산성 ()

양주 대모산성
양주 대모산성
건축
유적
문화재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대모산(大母山)에 있는 삼국시대 거점산성의 전형적인 성격을 가진 석축 성곽. 산성.
이칭
이칭
양주산성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2013년 06월 21일 지정)
소재지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방성리 789
정의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대모산(大母山)에 있는 삼국시대 거점산성의 전형적인 성격을 가진 석축 성곽. 산성.
개설

양주 분지 중앙에 솟아 있는 불곡산과 호명산 사이에 위치한 해발 213m의 구릉 정상부에 축조되어 있다. 정상부는 남북으로 이어진 중앙 능선을 중심으로 완만한 경사면과 평지가 연속되고 있다. 반면에 7부 능선 이하는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성벽은 정상부에서 급경사면이 시작되는 부분을 따라서 축조되어 있다. 내부에는 비교적 넓은 평지가 조성되어 공간을 활용하기가 편리하다.

성벽은 대부분 붕괴된 상태이지만 하부 유구는 매몰되어 있어서 비교적 원형대로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총 길이는 718m이며 이중 성벽이 양호한 구간은 130m 정도이다. 일부 구간에서는 체성의 외벽을 보강한 보축성벽이 확인되고 있다. 화강암 석재를 가공하여 품(品)자형으로 정연하게 축조하였다.

내부에는 문지가 3개소, 우물지 1개소 등이 있고 다수의 건물지가 조성되어 있다. 이중 문지는 3개소 및 일부 건물지에 대하여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이 밖에도 저장시설 등 유구가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구체적인 상황은 알 수 없다.

역사적 변천

대모산성 발굴조사는 문지와 산성 내부 일부 건물지에 대하여 실시되었다. 그 결과 문지 3개소, 건물지 11개소, 수혈유구 30 개소 등 유구가 출토되었고 약 13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던 것으로 보고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만기요람(萬機要覽)』, 『경기지(京畿誌)』, 『경기읍지(京畿邑誌)』, 『여도비망(輿圖備志)』,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서 양주 대모성산(大母城山), 대모산성(大母山城)의 기록이 남아 있다.

내용

성벽은 체성과 보축으로 나누어지는데 모두 삼국시대 전형적인 석성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우선 체성은 화강암을 치석하여 정연하게 축조하였다. 성돌로 사용된 석재는 대부분 주변 지역에서 채석한 것들로 추정된다. 면석은 장방형이 대부분으로 면과 모를 다듬어 빈틈없이 쌓아올렸다.

외벽하단부는 체성에 보축을 덧붙여 보강하였다. 보축 역시 치석된 석재를 사용하였다. 매 단 위로 올라가면서 들여쌓기를 하였는데 단면을 보면 계단식 형태를 이루며 윗부분은 체성에 붙었다. 경기도 지역에서는 포천 반월산성, 파주 칠중성, 하남 이성산성, 서울 아차산성 등에서 같은 형태의 보축이 보이고 있다. 7세기 신라의 전형적인 보축으로 삼국시대 가장 발달된 형태의 보축성벽이다.

문지는 모두 현문식으로 삼국시대 성문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폭은 520-559㎝로 비교적 일정하다. 동문지는 바닥에 장방형의 판석을 깔았던 현문식이었다. 문확쇠의 형태로 보아 밖으로 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대부분 성문이 안으로 열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성문 사용과 관련하여 귀중한 자료가 된다. 서문지도 현문식으로 사다리 같은 등성시설을 활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지 바닥은 납작한 할석을 깔아서 마무리 하였다.

특징

대모산성 문지는 모두 현문식으로 삼국시대의 전형적인 성문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어 주목된다. 다른 산성의 경우 삼국시대 성문은 조선 초기 이전에 모두 파괴되어 그 형태와 구조를 짐작하기 어려운 것이 많다. 하지만 대모산성의 경우에는 조선시대에도 지속적으로 보수되어 사용되어 와서 측벽이나 바닥이 비교적 상태가 양호하게 남아 있다. 더구나 문지 주변 성벽도 상태도 문지와 함께 보수되어 비교적 다른 산성의 현문 유구에 비하여 양호한 상태이다. 따라서 삼국시대의 현문의 활용과 축조 방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주목된다.

의의와 평가

대모산성은 대체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정확한 초축 시기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현재까지 조사와 연구에 의하면 군사와 행정을 겸하는 거점산성의 전형적인 성격을 가진 것으로 주목된다. 삼국시대 이후 조선시대까지 각 시대의 성곽 축조 및 활용 문제와 그 변화상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으로도 가치가 크다.

참고문헌

『양주 대모산성』(한림대학교 박물관,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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