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산성 ()

부안 백산성
부안 백산성
건축
유적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백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건물터 · 옛 우물터 · 토기조각 등이 출토된 성곽터. 산성터. 사적.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백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건물터 · 옛 우물터 · 토기조각 등이 출토된 성곽터. 산성터. 사적.
개설

해발 약 48m 백산 정상부를 감싸고 축조되어 있다. 외성을 포함하여 4단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전하나 성벽의 흔적은 뚜렷하지 않다. 백산성 정상부는 평탄하게 다듬어져 있다. 규모는 폭 25m, 길이 80m, 둘레 182m이다. 현재 이곳에는 동학농민기념탑이 자리잡고 있다. 그 아래로는 폭 5m 정도 규모의 단이 정상부의 대지를 감싸고 있다. 다시 그 아래로는 유사한 단이 3단 정도 동심원의 형태를 이루며 이어진다. 이 같은 구조에 주목하여 조사자들 가운데는 백산성을 3중으로 구성된 겹성으로 파악하고 각 단을 상성, 중성, 외성으로 표기하고 있다. 또한 외성 바깥을 목책과 같은 방어시설이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토루나 성벽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성내부로 추정되는 지역은 현재 경작으로 파괴가 심하다. 풍화암반과 생토층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북쪽과 동쪽 기슭은 채석장 개발로 잘려나갔다. 남쪽으로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역사적 변천

백산성이 언제 축조되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백제가 멸망한 후 일본에 있던 풍왕을 옹립한 부흥군이 일본군을 맞이하였던 백촌(白村)으로 비정되기도 하여 660∼ 663년 사이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근거는 부족하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시 이곳에 집결하여 전주 방면으로 진격하였다. 그러한 역사성이 인정되어 1976년 4월 2일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1998년 9월 17일 국가 사적으로 승격되면서 명칭도 '부안 백산성'이 되었다.

내용

백산성은 동진강 서안의 해발 48m의 구릉에 위치하나 주변이 평야지대여서 이 지역에서는 비교적 높은 고지대에 해당된다. 정상부에서는 사방이 조망된다. 백산성 동쪽 강안지대는 배를 대기 좋은 지형으로 고대부터 해상교통의 요지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동진강을 따라 북으로 약 12㎞ 배를 타고 나가면 동진강 하구이다. 육로로는 남쪽으로 고부, 동쪽으로는 신태인, 북쪽으로는 김제, 서쪽으로는 부안 등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백산성은 해로와 육로가 연결되는 요지라 할 수 있다. 고대부터 교역의 중심지로 기능하였을 가능성이 큰 곳이다. 이와 같은 지리적 이점으로 성곽이 축조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동안 백산성은 사적으로 지정되기는 하였지만 성벽의 범위, 통과선, 형태, 구조, 축조방식 등 기초적인 자료들이 전혀 파악되지 않았다. 성과 관련된 지명, 전설 등으로 백제부흥군과의 관련성이 제기되기도 하였지만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고고학적 근거가 제시된 적도 없다. 2008년 백산성의 성격을 규명하기 위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성벽, 목책, 성내시설물 등 성곽과 관련된 유구는 찾지 못하였다. 다만 구석기,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유구와 유물들이 이 당시 발굴조사에서 출토되었다. 이는 선사시대부터 이곳이 이지역의 중심지였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특징

백산성은 고대의 토성지로알려져 있으나 성곽으로 인정 받기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성벽의 존재가 불분명하다. 성벽이 붕괴되고 경작이나 마을이 입지하면서 사라졌다하여도 기초부 등 하부 유구는 남아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백산성에서는 그 흔적이 출토되지 않아서 성격을 가늠하기 어렵다

의의와 평가

성곽과 관련된 고고학적 근거는 아직 부족하다. 하지만 동학농민군이 봉기하였던 역사 현장으로 가치는 분명하다 .

참고문헌

『부안 백산성』(전북문화재연구원, 2010)
『전북 고대산성 조사보고서』(한서고대학연구소, 2003)
『부안군지』(부안군, 1991)
「부안지방 고대위곽유적과 그 유물」(전영래, 『전북유적조사보고』 4, 1975)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서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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