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회진성 ( )

나주 회진성
나주 회진성
건축
유적
국가유산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에 있는 고대의 토축 성곽. 평산성.
시도자연유산
지정 명칭
나주회진성(羅州會津城)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지정기관
전라남도
종목
전라남도 시도기념물(1986년 02월 17일 지정)
소재지
전남 나주시 다도면 신풍리 산8-1번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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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에 있는 고대의 토축 성곽. 평산성.
개설

나주시청에서 서쪽으로 약 5㎞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영산강 북안 해발 159m 거마산(擧馬山) 정상부에서 남동 방향으로 뻗은 두개의 능선과 그 중앙의 계곡부을 가로막아 축조하였다. 1984년 발견되어 알려졌는데 백제토기가 수습되어 백제시대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1993년 전남대학교 박물관이 남문터 및 건물지 일부를 발굴하였다. 2006∼2008년에는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현,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가 3차에 걸쳐서 남쪽벽 일대성벽과 성내부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성벽의 축조방법과 구조 등이 밝혀졌지만 축조시기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성벽 외곽에서 백제 석실분이 출토되었고 성내부에서 통일신라시대 토기가 출토되어 삼국시대(7세기 이전)에 축조되었다고 하는 주장과 성벽구조나 특징으로 보아 9세기에 축조되었다는 견해가 서로 대립하고 있다.

역사적 변천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발굴조사시 출토된 기와 중 ‘회진현대성자개우(會津縣大城子盖雨)’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있다. 회진현은 통일신라시대의 행정구역으로 ‘회진현대성’은 당시 회진성을 가르키는 명칭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도 발굴 조사시 통일신라에서 고려시대에 걸치는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또한 성벽이 파괴되면서 조선시대 가마터가 들어선 것도 확인되었다. 이러한 정황으로 회진토성은 통일신라시대 축조되어 고려시대까지는 회진현성으로 기능이 유지되었다가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그 기능을 상실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내용

회진성의 성벽은 해발 10m에서 해발 150m에 걸쳐 있다. 구릉(산)에서 평지로 이어지는 평산성이다. 성벽은 서로 다른 성질의 흙은 겹겹이 다져올리는 방식(판축)으로 측조하였다. 판축 토루는 평지부분은 780㎝, 동편 구릉부분은 660m이다. 여기에 덧대어 축조한 외피토루는 평지부 안쪽에서 230~260m 정도 확인되었다. 잔존 최고 높이 360㎝이며 전체너비는 평지부는 최대 1280㎝이다. 기저부의 축조방식도 지형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평지부는 기초석을 놓기 위해 생토면을 깎아 정지한 후 흑갈사질점토층을깔고 기초석을 2단으로 배치하였다. 구릉부는 중심토루 외벽 기초석렬을 배치할 곳에는 토루 안쪽으로 50㎝정도 L자 형태로 생토층을 파내고 그 안을 풍화토와 점토로 얕게 다졌고 그 위로 점토와 풍화토로 두껍게 판축하여 쌓았다. 내벽 기초석렬은 자연지형 일부를 정지하여 암갈색사질점토로 다진 후 배치하였다.

기초석렬은 중심토루 하단부에 내 · 외벽 모두 2단으로 석재를 사용하여 축조하였다. 평지에서는 수평으로 놓았으나 경사면은 경사도를 그대로 활용하여(3°정도) 놓았다. 기초석렬은 2단석을 1단석에서 15㎝ 정도 들여쌓기하였고 2단석 전면에서 80°정도 경사를 이루며 거의 수직에 가깝게 판축토루를 축조하였다.

영정주(永定柱: 판축하기 위하여 세운 기둥)는 두께 20㎝ 내외의 각목을 사용하였으며 중심 간격은 316∼348㎝ 등으로 일정하지 않다. 중심토루는 점토와 풍화토를 2~10㎝ 두께로 교대로 판축하였다. 구간마다 하부와 상부의 판축두께에 차이가 있으며 영정주를 경계로 판축구간을 달리하고 있다. 판축토루 외부로 평지부에서는 수평성토한 외피토루가 조성되었다. 그 바깥으로는 보축석렬과 석축구조물을 마련하여 성벽을 보호하고 성벽으로 올라가는 기능도 하게 하였다.

특징

고대 토성으로는 규모가 상당히 큰 토성이다. 통일신라시대 이 지역의 통치와 관련하여 축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 주변에는 나주 복암리고분군이 있는데 이들은 백제 이전부터 대표적인 영산강 유역의 지방세력이다. 회진리토성은 이들과 관계 속에서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신라의 지방통치와 지방세력 사이의 관계와 변화를 보여주는 유적으로 주목된다. 아직 조사가 미진하여 정확한 서격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도성이 아닌 지방에서 보기드문 대형 성곽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

참고문헌

『 나주 회진성』(국립 나주문화재연구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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