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권 37 지리지 마지막 부분에 동해통, 북해통, 해남통, 염지통, 북요통 등 교통로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오통(五通)이라고 부르는데 이름 외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9주5소경을 설치하였다. 이 때 각 주의 치소와 소경 등을 왕래하는 교통로도 같이 정비되었다. 그 중 북해통은 경주에서 포항, 영덕, 삼척, 강릉 등 동해안 일대를 지나서 신라의 북쪽 국경이었던 원산 일대를 왕래하던 교통로로 추정된다.
북해통은 '북해로 통하는 교통로'란 의미로 보인다. 신라인들의 지리적 인식은 현재와는 차이가 있다. 서라벌(경주)을 중심으로 한반도의 지리를 인식하였다. 신라가 설치한 행정 및 군사 구역의 명칭을 살펴보면 신라인이 북해라고 인식한 바다를 추정할 수 있다. 신라는 현재 강릉에 북소경을, 삼척에 북진을 설치하였던 적도 있다. 이러한 기록을 보면 현재의 영동지역을 신라인들은 북쪽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현재 영동지역의 바다도 북해로 인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재의 동해안을 따라서 원산에 이르던 교통로를 북해통으로 볼 수 있다. 반면에 이를 현재의 지리적 인식을 대비하여 동해통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북해통은 원래 신라가 영동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해서 개척한 교통로이다. 6세기 후반경 마운령비와 황초령에 진흥왕 순수비가 건립된 것으로 보면 이 시기에 이미 교통로가 정비되어 활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삼국통일 후 북해통이란 명칭으로 재정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가 통일하기 이전에는 북방 문물의 교역로로 통일신라시대에는 발해와 교역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