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
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된 다음 날인 22일에는 영의정 이최응(李最應)이 총리대신으로, 경기감사 김보현(金輔鉉), 지중추부사 민겸호(閔謙鎬), 상호군 김병덕(金炳德), 예조참판 김홍집(金弘集) 등 10명이 당상으로 임명되어 발족하였다. 1895년 3월 칙령 제42호로 외부(外部)로 개편될 때까지 몇 차례의 기구 개편과 명칭 개칭이 있었다. 즉, 1881년 11월에는 12사를 개편, 통합해 동문(同文)·군무·통상·이용·전선·율례(律例)·감공 등의 7사로 했으나, 1882년 6월에 임오군란을 계기로 대원군이 재집권하자 이 아문은 폐지되었다. 그러다가 대원군의 실각으로 이 아문의 후신인 기무처가 7월에 설치되고, 11월에는 통리아문이 설치되었으며(외아문이라 통칭됨.), 다음 달 12월에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이라 개칭되었다. 이러한...